[기획] 나선성운 외곽의 붉은 호 최소 22개…별의 잔해가 흐려지는 ‘마지막 장면’

어두운 바다를 가르는 배가 보이지 않아도 뱃머리 앞의 물결은 볼 수 있다. 나선성운 동쪽 외곽에서 발견된 붉은 호들도 이와 비슷하다. 사진에 직접 잡힌 것은 ‘배’에 해당하는 가스 덩어리가 아니라, 그것이 주변 가스를 헤치며 만들었을 것으로 해석된 앞쪽의 붉은 물결이다. 연구진은 완전하거나 일부만 남은 Hα 호를 최소 22개 식별했다. Hα는 수소가 특정한 붉은빛을 내는 방출선으로, 충격을 받은 가스의 흔적을 드러내는 관측 수단이다.
호들은 중심별에서 멀어질수록 작고 흐릿하며 조각난 모습으로 바뀌었다. 연구진은 이를 별이 내보낸 조밀한 파편이 성간물질, 즉 별과 별 사이를 채운 가스와 먼지 속에서 깎이고 분열돼 원래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다만 이 ‘마지막 장면’은 수천 년 동안 변하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이 아니다. 한 장면 속 서로 다른 위치의 호들을 진화 순서처럼 배열해 읽은 우주 고고학에 가깝다.
초신성 잔해가 아닌, 외피를 벗은 별의 흔적
관측 대상인 NGC 7293, 나선성운은 지구에서 약 648광년 떨어져 있다. 이름에 ‘성운’이 붙지만 초신성 폭발의 잔해는 아니다. 저·중질량별이 생의 후기에 외피를 우주로 내보내고 중심에 백색왜성을 남기면서 형성된 행성상성운이다. 백색왜성은 핵연료를 다 쓴 별의 뜨겁고 조밀한 중심부다.
최소 22개의 호는 이 백색왜성으로부터 투영거리 0.4~1.4pc, 약 1.3~4.6광년 떨어진 동쪽 외곽에 놓여 있다. 가장 바깥 구조까지의 반지름만 놓고 보더라도 빛이 약 4년 반을 가야 하는 거리다. 일부 구조는 과거 영상에도 나타나 있었기 때문에 22개 모두를 처음 발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희미한 호들을 다수 분리해 식별하고, 각각의 크기와 형태가 중심별까지의 거리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량했다는 데 있다.
안쪽에서는 크고 얇으며 경계가 뚜렷한 호가 보였다. 바깥쪽으로 가면 호는 작고 폭이 넓어졌으며, 흐릿하거나 여러 조각으로 끊어졌다. 연구진이 비교한 곡률반경은 호가 얼마나 크게 휘었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관측점들의 변화 범위는 약 100배에 이르렀다. 다만 최적 회귀식이 0.4pc와 1.4pc 양 끝에서 예측하는 감소 폭은 약 39배다. 관측점의 전체 범위와 회귀식의 예측값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붉은 ‘뱃머리 물결’로 보이지 않는 파편을 추적하다
연구진은 호들을 활충격파로 해석했다. 활충격파(bow shock)는 물질이 주변 가스를 초음속으로 가르며 나아갈 때 진행 방향 앞쪽에 생기는 활 모양의 충격면이다. 그러나 충격파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 파편 자체는 아직 직접 검출되지 않았다. 포물선 모양 호의 초점 부근에서 Hα와 [N II], [O III]에 대응하는 천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N II]와 [O III]는 각각 이온화된 질소와 산소가 내는 빛이다. 연구진은 이런 빈 초점이 파편이 차갑고 대부분 중성이라는 해석에 들어맞는다고 봤다.
파편의 기원으로는 점근거성가지(AGB·저·중질량별이 수명을 마치기 전 외피를 강하게 방출하는 단계) 후기에 나온 조밀한 방출물이 제시됐다. 중심에서 약 1pc 떨어진 파편의 동역학적 나이는 2만~3만 년으로 추정된다. 나선성운이 행성상성운으로 형성된 약 1만2,000년 전보다 오래돼, 그 이전 AGB 단계의 방출물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장 밝은 14번 호에서는 [N II]/Hα 비율이 0.06±0.01이었고, [O III]/Hα는 2σ 기준 0.015 미만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MAPPINGS V 복사충격 모형과 비교해 동쪽의 충격속도를 80~90km/s로 추정했다. 이 속도라면 지구와 달의 평균거리를 약 71~80분에 건널 수 있다. 하지만 이는 14번 호의 선비와 모형에서 얻은 값으로, 최소 22개 호 각각을 분광해 직접 잰 속도가 아니다. 별의 방출물 자체가 바깥으로 팽창하는 속도는 이보다 느린 35~45km/s로 제시됐다.
한 장의 사진을 약 1만 년의 시간축으로 바꾼 방법
관측은 2025년 11월 16일과 19~24일 칠레 엘소스 천문대에서 이뤄졌다. 당시 건설 중이던 MOTHRA의 첫 5개 마운트가 가동됐다. MOTHRA는 하나의 거대한 거울 대신 상용 400mm 망원렌즈를 병렬로 묶어 희미하고 넓게 퍼진 빛을 모으는 장비다. 연구진은 Hα와 [N II], [O III], 연속광 영상을 얻은 뒤 별도로 찍은 하늘 영상으로 대기광 배경을 빼고, 별빛에 해당하는 연속광도 제거했다.
Hα 자료의 노출량은 172.5 single-lens-equivalent hours였다. 이는 실제 시계로 잰 경과시간이 아니라 렌즈 수와 노출시간을 곱한 값이다. 완성형 MOTHRA의 Hα 렌즈 504개가 같은 렌즈-시간을 모은다고 환산하면 약 20분 분량이다. 실제로 20분만 관측했다는 뜻은 아니다.
개별 호를 찾는 과정에는 사람의 판단도 들어갔다. 관측자가 호마다 먼저 5개 지점을 지정한 뒤 영상의 밝기 능선을 추출해 곡선을 맞췄다. 수동 지정점은 최종 적합값에 직접 쓰이지 않았지만 구조 선택의 출발점이었다. 연구진은 포물선·쌍곡선·타원·Wilkin형을 비교하고, 투영된 뒤에도 함수 형태가 유지되는 포물선을 최종 분석 기준으로 삼았다. 여러 모형 사이의 산포는 계통오차에 반영했다.
그다음 서로 다른 거리에 놓인 호들을 같은 종류 파편의 진화 단계로 보고, 대표 팽창속도 약 40km/s를 적용했다. 곡률반경이 e분의 1로 줄어드는 적합 거리는 0.27pc, 약 0.88광년이었고 이에 대응하는 시간은 약 7000년이었다. 이를 토대로 조밀한 파편과 활 구조가 형태적 일관성을 잃는 생존시간을 약 1만 년으로 추정했다. 이는 물질의 질량과 금속, 먼지가 원자 수준까지 완전히 섞이는 시간을 뜻하지 않는다.
중성 파편을 직접 찾기 전까지 남는 질문
가장 큰 한계는 시간을 직접 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관측은 단일 시점의 2차원 영상이다. 각 호의 초기 크기와 질량, 속도, 방출 시기, 실제 3차원 이동 방향이 서로 다르다면 거리를 시간으로 바꾼 약 1만 년이라는 값도 달라질 수 있다. 불완전한 호는 꼭짓점과 축을 정하기 어렵고, 관측자 간 일치도나 거짓양성률, 인위적인 구조를 넣어 얼마나 회수되는지 확인하는 검출효율 시험도 제시되지 않았다.
공개 동료심사에서는 호들이 오래된 AGB 껍질의 파편이 아니라 더 빠르고 집중된 쌍극성 분출의 ‘탄환’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경우 중심별과의 거리별 크기 차이를 곧바로 혼합의 시간표로 해석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심사 과정에서 진단력이 부족했던 약 20km/s의 초기 팽창속도를 삭제하고, 광이온화 설명을 중성가스 속 충격 이온화 모형으로 바꿨다. 기본 형상도 Wilkin형에서 포물선 곡률반경으로 변경했으며, 쌍극성 분출 가능성을 최종 논문에 포함했다. 분석이 수정·보강됐지만 대안 가설이 관측으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또 이번 결과는 하나의 행성상성운에서 본 최소 22개 호에 관한 것이다. 22개의 서로 다른 행성상성운을 조사한 결과가 아니며, 약 1만 년이라는 형태적 생존시간을 다른 천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다음 검증 단계는 CO 회전선과 H₂ 1–0 S(1) 2.12μm 관측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 중성 파편을 직접 찾는 일이다. 다른 행성상성운에서도 거리가 멀수록 활 구조가 작고 흐트러지는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붉은 물결 앞에 실제 ‘배’가 있는지 밝혀질 때, 별이 내보낸 물질이 성간물질로 되돌아가는 마지막 과정의 시간표도 한층 분명해질 수 있다.
칠레의 또 다른 언덕, 한국도 작은 망원경 스무 대를 묶었다
거울 하나를 키우는 대신 망원경을 여러 대 묶는 전략은 한국에도 있다. 서울대학교 중력파우주연구단은 2023년 10월부터 칠레 리오우르타도 계곡 엘사우세 천문대에서 7차원 망원경(7DT)을 운영하고 있다. 구경 50㎝ 망원경 20대와 폭 25나노미터짜리 중대역 필터 40장, 6100만 화소 카메라로 설계된 장비로, 한 번에 약 1.25제곱도의 하늘을 담는다. 보름달 여섯 개를 합쳐 놓은 넓이다.
겨냥하는 대상은 다르다. MOTHRA가 희미하고 넓게 퍼진 빛을 모으는 쪽이라면, 7DT는 필터로 색을 잘게 나눠 '지금 변하고 있는 것'을 잡는다. 중력파를 낸 천체의 빛을 찾고 남쪽 하늘의 분광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실제 성과도 시간축 위에 있다. 연구진은 지난해 7~9월 세 번째 성간천체 3I/ATLAS를 추적해, 태양과의 거리가 지구 궤도 반지름의 3배 안쪽으로 좁혀지자 혜성 활동의 지표인 시안(CN) 가스가 넓게 퍼지고, 코마의 밝기 절반이 담기는 반지름이 약 1만1000㎞에서 1만9000㎞로 부푸는 과정을 갈라 보였다.
큰 거울과 작은 어레이, 대체재가 아니라 분업
대형 망원경 쪽 참여도 진행 중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미국·칠레·호주·브라질·이스라엘·대만 등 16개 기관이 참여하는 거대마젤란망원경(GMT)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지름 8.4m 거울을 여러 장 이어 붙이는 이 망원경의 가시광·근적외선 분광기 등 기기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한쪽은 넓게 훑고, 다른 쪽은 한 점을 깊게 파고든다.
작은 망원경을 묶는 쪽의 숙제는 하늘이 아니라 저장장치에 있다. 7DT 연구진은 자체 논문에서 하룻밤 약 1테라바이트, 세 층으로 짠 서베이가 본격화하면 연간 1페타바이트 규모의 자료가 쌓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나선성운 연구가 사람의 손으로 호마다 다섯 점을 찍어 시작했다는 대목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렌즈를 504개까지 늘리든 망원경을 20대로 채우든, 희미한 구조를 골라내는 마지막 판단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느냐가 결과의 신뢰도를 정한다.
자료: Dragonfly Focused Research Organization·Nature·서울대학교 중력파우주연구단·한국천문연구원·거대마젤란망원경(GMT) 국제컨소시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