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AI가 설계한 파지 게놈 16개 ‘작동’…내성 돌파는 실험실 진화 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17 07:07 · 수정 2026.08.20 14:46
5,386글자 DNA 자동완성에서 기능성 바이러스까지…성과와 생물보안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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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Leibniz Institute DSMZ / PhageDive, CC BY 4.0)

302→285→16→9. 인공지능(AI)이 제안하고 사람이 추린 바이러스 게놈 후보 302개 가운데 285개가 실제 DNA로 만들어졌다. 그중 16개 파지 계통이 대장균에 감염돼 증식했으며, 주문한 설계도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회수된 것은 9개였다. 파지는 세균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다. 연구진이 다룬 ΦX174는 A·C·G·T 네 글자로 적힌 5,386염기의 작은 유전체를 지녔다. AI가 단백질 하나가 아니라 이 유전체 전체의 후보를 쓰고, 합성된 DNA가 실제 바이러스로 다시 작동했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다만 ‘AI가 생명을 백지에서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Arc Institute와 Stanford University 연구진은 자연 파지 ΦX174와 같은 Microviridae(작은 단일가닥 DNA 파지 무리)의 서열을 교본으로 삼았다. 모델을 이 파지군에 맞게 추가 학습하고, 첫 4∼9염기를 제시한 뒤 나머지 서열을 자동완성하게 했다. 생성 결과에는 길이와 GC 함량, 단백질 구성, 스파이크 단백질 유사도 등을 따지는 강한 필터와 사람의 검토도 적용했다. AI가 자연과 동떨어진 생물을 발명했다기보다, 자연형 주변의 가능한 설계 공간을 빠르게 탐색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1977년에는 읽고, 2003년에는 복사했다

ΦX174는 전체 게놈을 다루는 생명공학의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파지다. 1977년 최초로 전체 염기서열을 읽은 DNA 게놈이 됐고, 2003년에는 알려진 5,386염기 자연 서열을 259개 합성 DNA 조각으로 조립해 감염성 파지를 회수했다. 따라서 완전한 ΦX174 게놈을 합성한 것 자체가 이번 연구의 최초 기록은 아니다. 새로운 점은 자연 서열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생성모델이 변형된 완전 게놈 후보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

전체 게놈 설계는 단백질 하나를 고치는 일보다 복잡하다. ΦX174에는 같은 DNA 구간을 여러 유전자가 겹쳐 사용하는 부분이 있다. 한 글자의 변화가 서로 다른 단백질이나 조절 기능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Microviridae 서열 15,507개를 모은 뒤 부적합 자료를 제거하고, 99% 이상 같은 서열을 묶어 14,466개를 사용했다. 이 가운데 14,266개는 학습, 100개씩은 검증과 시험에 배정했다. 범용 모델만으로는 ΦX174형 완전 게놈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어려워 파지군 특화 미세조정도 필요했다.

체계적인 생성 탐색에서는 온도 조건 5개, 시작 프롬프트 길이 11개, 두 모델을 조합해 약 11만개 서열을 만들었다. 이후 길이 4∼6kb, GC 함량 30∼65%, 긴 동종중합체 제외, 유전자와 단백질 구성 등의 기준을 거쳐 302개 후보를 골랐다. 그러므로 기능성 비율 16/302, 즉 5.30%나 실제 조립한 후보 기준 16/285, 즉 5.61%를 AI의 가공되지 않은 출력 전체에 대한 성공률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컴퓨터의 문자열이 바이러스로 작동하기까지

선별한 후보 중 285개는 각각 두 DNA 조각으로 합성됐다. 연구진은 Gibson assembly(겹치는 DNA 조각을 이어 붙이는 조립법)로 이를 원형 DNA로 만들고 비병원성 대장균 C에 넣었다. 16개에서 세균 성장 억제와 플라크가 나타났다. 플라크는 파지가 증식하며 세균을 터뜨려 배양 접시에 남긴 빈자리다. 연구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파지를 다시 증식시키고, 역가를 측정하고, 롱리드 염기서열 분석으로 긴 게놈을 확인했다.

기능한 16개 계통 가운데 설계 서열과 정확히 일치한 것은 9개였다. 나머지 7개는 DNA 합성이나 재가동·증식 과정에서 단일염기변이 또는 결실을 얻었다. 따라서 ‘AI 설계 그대로 작동한 파지 16개’라고 부르면 부정확하지만, 변화를 거친 계통까지 포함해 16개가 실제 파지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9개로 축소해서도 안 된다. 성공한 파지는 가장 가까운 자연 파지와 93.0∼98.8% 같았고, 차이는 67∼392염기였다. 자연 계통과 완전히 단절된 설계가 아니라 ΦX174와 가까운 진화 공간에서 찾은 새 조합이었다.

숙주 범위도 좁았다. 시험한 대장균 8개 계통 중 16개 파지는 모두 대장균 C를 억제했고, 15개와 자연형 ΦX174는 대장균 W를 억제했다. 대장균 B와 K-12 계열 5개를 합친 나머지 6개 계통에서는 억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표적 범위가 좁은 것은 불필요한 세균 공격을 줄일 가능성이 있지만, 목표로 삼지 않은 W까지 감염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정밀 타격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일부 설계 파지는 실험실 조건에서 자연형보다 높은 경쟁력이나 빠른 용균 동역학을 보였다. Evo-Φ69의 6시간 경쟁 적합도는 16∼65배였고 자연형 ΦX174는 1.3∼4.0배였다. Evo-Φ2483은 배양액의 탁도를 나타내는 OD600이 최저 0.07까지 내려가 자연형의 0.22보다 낮았으며, 최저점에 이르는 시간도 135분으로 자연형의 180분보다 짧았다. 그러나 OD600은 살아남은 세균의 비율이 아니므로 이를 ‘93% 살균’으로 바꿔 말할 수는 없다.

내성의 문은 처음부터 열리지 않았다

‘내성 대장균을 뚫었다’는 표현에는 중요한 조건이 붙는다. 대상은 항생제 내성 임상균이 아니라 ΦX174 파지에 내성을 갖도록 실험실에서 선택한 대장균 C 세 균주 CR1·CR2·CR3였다. 이들에는 waaT 또는 waaW 등 파지가 접촉하는 세포 표면 지질다당류의 합성과 관련된 변이가 있었다. 연구진이 AI 파지 16개와 자연형 ΦX174 하나를 섞은 17개 칵테일을 처음 넣었을 때는 세 내성균 모두 억제되지 않았다.

문이 열린 것은 파지에 진화할 시간을 준 뒤였다. 연구진은 파지가 증식할 수 있는 감수성균과 내성균을 함께 배양하고 다음 배양으로 옮기는 계대진화를 반복했다. CR1은 1회, CR2는 2회, CR3는 5회 계대 뒤 억제됐다. CR1과 CR2에서 우세해진 Evo-ΦR1·R2는 AI 파지 2∼3개의 게놈 조각이 섞인 재조합체였고, 새로운 캡시드 변이도 지녔다. 캡시드는 바이러스 유전체를 싸는 단백질 껍질이다. CR3에서 우세해진 파지의 서열은 공개 원문에 보고되지 않았다.

이는 AI가 내성균을 공격할 정답을 곧바로 맞혔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설계 파지들이 후속 재조합과 돌연변이의 재료를 제공했고, 감수성균에서 먼저 증식하는 과정이 모자이크 형태의 새 열쇠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내성균만 있는 환경이나 환자 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비병원성 대장균을 이용한 시험관 실험이며, 동물 효능과 독성, 면역중화, 장내미생물 영향, 제조 일관성을 평가한 치료시험이 아니다.

설계 능력과 안전장치를 함께 시험해야 한다

연구의 한계는 AI의 기여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도 있다. 합의서열, 판독틀을 보존한 무작위 변이, 조상서열 복원 같은 비-AI 생성법과 성공률을 직접 비교하지 않아 생성모델이 얼마나 더 효율적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독립 재분석에서는 Evo 2 점수의 생존성 판별 AUC가 0.86이었지만, 자연 파지에서 멀어질수록 점수가 낮아지는 강한 상관관계도 나타났다. 이 분석은 현재 모델을 ‘발명가’보다는 자연형 주변을 찾는 진화 최적화기로 해석할 근거를 주지만 아직 동료평가 전이다.

시험대 자체도 작고 안전한 ΦX174에 한정됐다. 대형 이중가닥 DNA 파지나 RNA 바이러스, 사람·동물·식물 바이러스에 같은 성공률을 적용할 근거는 없다. 연구진은 진핵생물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자료를 학습에서 제외했고, 비병원성 대장균과 생물안전작업대, 전용 장비, 소독·폐기 절차를 사용했다. 이는 실험 중 사고를 막는 생물안전 조치다. 모델이나 합성 기술의 악용을 막는 생물보안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화면에 DNA 문자열을 만드는 것과 실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 사이에는 DNA 합성, 조립, 숙주 투입, 증식 확인이라는 물리적 문턱이 있다. 이번 연구는 안전한 소형 파지에서 AI 설계부터 기능성 바이러스 재가동까지 이어지는 폐회로를 연결했다. 바로 그 때문에 모델 접근관리, DNA 주문 서열 스크리닝, 실험실 생물안전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2026년 8월 17일 기준 다른 연구실이 같은 16개 파지의 감염성·경쟁력·내성 돌파를 독립적인 습식실험으로 재현한 공개 보고도 확인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질병관리청이 치료용 파지의 품질·안전성·효능 선별 표준을 마련하는 Phage Korea 컨소시엄 과제를 공고했다. 총 사업비는 5억7,500만원, 계약기간은 2년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2026년 4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총 7억7,000만원을 들여 박테리오파지 수용체와 부착 단백 데이터세트를 구축한다. 두 과제는 이번 AI 완전 게놈 생성 연구의 재현이 아니다. 성과의 현재 위치는 임상 치료제 완성이 아니라, AI가 제시한 전체 게놈 후보를 실제 DNA로 만들고 기능을 시험하는 기술적 연결고리가 작동했음을 보인 단계다.

한국은 파지 한 종보다 '설계 공장'에 먼저 돈을 넣었다

같은 회로에 붙은 국내 예산은 파지 자체보다 그 앞 단계에 몰려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설계·합성·시험을 자동화하는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및 활용기반 구축 사업을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총사업비 1,263억원 규모로 추진한다. 전용 센터 완공 목표는 2027년이다.

수요 쪽 숫자가 더 급하다. 관계부처가 함께 만들어 2026년부터 시행하는 제3차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은 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위이고, 부적정 처방률은 약 30%, 요양병원의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 내성률은 약 50%라고 진단했다. 항생제 내성 관련 사망자는 2021년 약 2만2,700명으로 추계됐고, 2030년에는 한 해 3만2,400명까지 늘어난다고 봤다.

규범이 갈리는 곳은 실험대가 아니라 주문서다

이미 작동 중인 공식 규범은 합성 단계를 겨눈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은 2024년 4월 29일 핵산 합성 스크리닝 프레임워크를 내놓고, 연방 생명과학 연구비를 받는 조건으로 이 기준을 지키는 공급자에게서만 합성 핵산과 탁상형 합성장비를 사도록 했다. 미 보건부 대비대응차관보실(ASPR)에 따르면 검색 대상 구간은 2010년 지침의 200염기에서 50염기로 좁혀졌다. 이번 연구가 주문한 파지 게놈은 5,386염기로, 50염기는 그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조각이다.

이 프레임워크는 2025년 5월 5일 행정명령에 따라 개정되거나 대체될 예정이어서 국제 기준 자체가 아직 굳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2025년 1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가 바이오 안보 강화를 과제로 내걸었다. 이 위원회는 민간위원 24명과 정부위원 12명으로 구성됐고, 정부위원에는 국가안보실 제3차장이 포함됐다. 설계를 자동화하는 시설과 주문을 걸러내는 규칙이 같은 속도로 가야 한다는 점이, 이번 연구가 남긴 숙제 목록에서 가장 먼저 읽힌다.

자료: Arc Institute·Stanford University·미국 국립의학도서관·Johns Hopkins Center for Health Security·University of Oxford·질병관리청·국립보건연구원·세계보건기구·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국가바이오위원회·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미국 보건부 대비대응차관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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