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문 데이터 학습한 AI로 고온 안정 무연 유전체 개발
논문 수백 편에 흩어져 있던 실험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읽고 학습해 납 없이도 고온에서 성능이 안정적인 새 유전체 소재를 찾아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재료공학부 장호원 교수 연구팀이 멀티모달 문헌 마이닝(논문 본문·표·그래프에 흩어진 정보를 자동 추출하는 기술)과 물리 기반 머신러닝을 결합해 무연(無鉛) 유전체를 설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송관우 석박사통합과정생(삼성전기 재직)이 제1저자로 전 과정을 주도했고 김영민 석박사통합과정생과 김재현 박사후연구원이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무연 조성 후보 '사실상 무한대'…데이터도 논문마다 제각각
유전체는 전기가 바로 흐르지 않도록 막으면서 전하를 저장하는 절연 소재로, 스마트폰과 전기차 등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의 핵심 재료다. 유전율(전기를 저장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값)이 높을수록 같은 크기의 부품에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고, 높은 온도에서도 성능이 유지돼야 실제 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
전기차와 전력전자, 항공우주 장비처럼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전자기기가 늘면서 온도 변화에 강한 유전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온도에 따른 전기적 반응이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 완화형 강유전체(릴랙서)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지만, 납을 쓰지 않는 조성만 놓고도 원소 종류와 혼합비에 따라 후보가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워 시행착오 방식으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관련 데이터가 논문마다 본문·표·그래프에 흩어져 있고 온도·주파수·시료 등 측정 조건도 제각각이라 머신러닝 학습에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448편 논문서 데이터 1202건…1억5000만 조성 좁혀 2종 합성
연구팀은 대규모 언어모델로 논문 본문과 표에서 조성과 공정 조건을 정리하고 그래프를 수치 데이터로 변환해 448편의 논문에서 1202건의 유전 특성 데이터를 구축했다. 여기에 원소 조성과 미세구조 등 22개 물리 지표를 반영해 서로 다른 문헌에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학습 데이터로 통합했다. 이어 서로 다르게 학습된 30개 머신러닝 모델을 결합해 유전율과 온도 안정성에 관한 세 가지 핵심 지표를 동시에 예측하고, 모델 간 예측 일치도를 평가해 신뢰도가 높은 후보를 우선 골라내도록 설계했다.
약 1억5000만 개의 가상 조성 공간에 성능 목표와 물리·화학 조건을 차례로 적용해 후보를 37개로 좁혔고, 이 가운데 성분 비율을 정밀하게 조정한 두 조성을 실제 합성했다. 주석(Sn)을 각각 1mol%와 2mol% 치환한 두 시료는 상온에서 3422와 3307의 높은 유전율을 기록했다. 두 시료 모두 적층세라믹콘덴서 국제 규격(X5R·X6R·X7R·통상 영하 55도부터 85~125도까지 유전율 변화를 ±15% 이내로 유지하는지 나타내는 온도 안정성 등급)의 고온 안정성 기준을 만족했고, 현재 널리 쓰이는 티탄산바륨(BaTiO₃)보다 넓은 온도 범위에서 유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같은 계열의 기존 문헌 데이터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준의 유전율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압전반응힘 현미경과 라만분광법, 원자분해능 전자현미경 분석을 종합해 소량의 주석 첨가가 결정 골격을 넓히고 원자 규모의 전기적 불균일성을 키워 온도 안정성을 높인다는 작동 원리도 규명했다.
장호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머신러닝으로 성능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논문에 흩어진 정보를 학습 데이터로 통합한 뒤 물리 법칙과 모델 간 예측의 일관성을 함께 따져 실제 합성 후보까지 좁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데이터가 여러 논문과 형식에 흩어져 있어 체계적인 통합이 필요한 다른 기능성 산화물과 박막 소재의 후보 탐색에도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검증한 무연 유전체는 고온용 적층세라믹콘덴서를 비롯해 전기차, 전력전자, 항공우주용 전자부품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한국연구재단(NRF),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자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