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한 나노 구조 속 숨은 반복 규칙 찾았다…메타표면 설계 빨라진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렌즈나 손끝 위에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인 '메타표면'을 지금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는 나노 구조 안에 숨어 있는 반복 규칙을 찾아내 계산량을 크게 줄이는 방법을 국내 연구진이 내놨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는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와 기계공학과 김석우 박사 연구팀이 무아레(Moiré) 무늬의 원리를 이용해 무질서한 나노 구조 속에 숨은 주기성(같은 모양이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성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운동량이 부호화된 메타표면의 숨은 주기성 규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10억 개 나노 구조물, 수십 개 단위 계산으로 푼다
메타표면은 빛의 파장보다 작은 나노 구조물을 표면에 배열해 빛의 방향과 색을 원하는 대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두께가 머리카락보다 얇은 렌즈, 평면 소자로 구현하는 홀로그램 등 차세대 광학 부품의 바탕이 되는 기술로 꼽힌다.
구조물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되는 소자는 가장 작은 반복 단위 하나만 계산해도 전체 성질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메타표면으로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려면 구조물 하나하나의 크기와 방향을 조금씩 다르게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배치가 달라질수록 전체 모양이 복잡해지고, 표면을 규칙적으로 채우던 반복 패턴인 주기성이 깨져 소자가 빛을 어떻게 조절할지 계산하기 어려워진다.
컴퓨터로 계산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로세로 수 센티미터(cm) 크기의 메타표면에는 10억 개가 넘는 나노 구조물이 들어가 있어 막대한 계산 시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구조를 단순하게 가정하거나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연구팀은 복잡해 보이는 구조 아래에 반복되는 규칙이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그 실마리를 무아레 무늬에서 찾았다. 무아레 무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두 패턴이 조금 어긋난 채 겹칠 때 나타나는 커다란 물결 모양 무늬로, 얇은 모기장이나 커튼을 두 장 겹쳤을 때 어른거리는 무늬가 대표적인 예다.
연구팀은 메타표면을 이루는 기본 배열과, 빛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더해진 변화를 서로 다른 두 패턴이 겹친 것으로 해석했다. 이어 두 패턴의 각도와 간격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복잡해 보이던 구조 안에서도 큰 반복 패턴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렇게 다시 나타나는 커다란 반복 단위를 '방향성 무아레 초격자'(기본 격자보다 큰 주기로 되풀이되는 반복 구조)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10억 개가 넘는 구조물로 이뤄진 소자라도 수십 개의 나노 구조물로 구성된 작은 단위만 계산해 전체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구조물을 자유롭게 배치해 설계 자유도를 높이면서도 해석에 드는 계산 부담은 크게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 소자로 검증…빛·소리·진동 등 파동 전반에 적용 가능
연구팀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실제 메타표면 소자를 제작해, 예측한 대로 빛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되는 것을 확인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빛과 원치 않는 방향으로 퍼지는 빛을 구분해 소자의 성능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점도 입증했다.
이번에 밝힌 원리는 빛뿐 아니라 소리, 전자, 진동처럼 파동으로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용 광학 소자나 고효율 나노 렌즈를 더 빠르고 정밀하게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노준석 교수는 "무질서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이 방법은 차세대 광학 소자 개발에 속도를 더할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김석우 박사가 논문 제1저자로 참여했다. 포스코가 지원하는 포스코-포스텍-RIST 융합연구센터 프로그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김석우 박사 등 참여 연구자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세종과학펠로우십 지원을 받았다.
자료: 포항공과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