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5분 만에 1만4663개 흔적…T7 파지의 ‘무차별 키나아제’가 세균 방어망을 흔드는 법

침입자가 문마다 맞는 열쇠를 준비하는 대신 건물 배전반의 스위치를 한꺼번에 건드린다면 어떨까. 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T7 파지는 이와 비슷한 전략을 쓴다. 1974년 발견된 T7 파지의 키나아제 T7K가 감염 중 발현·검출된 숙주와 파지 단백질 2,967개 가운데 2,084개, 정확히 70.24%를 인산화하는 효소로 밝혀졌다. 인산화는 단백질에 인산기를 붙이는 화학적 표지다. 다만 표지가 묻었다고 단백질이 모두 멈춘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넓게 흔적을 남기면서도 세균의 방어가 몰린 핵산 주변에는 더 강하게 작용하는 방식에 있다.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중심 연구진은 2026년 8월 19일 이 결과를 공개했다. T7K는 T7의 초기 유전자 0.7이 만드는 359개 아미노산 길이의 단백질 gp0.7이다. 앞부분인 1~242번은 인산화를 수행하는 키나아제 영역이고, 뒷부분인 243~359번은 SO 영역이다. T7K는 세린·트레오닌뿐 아니라 티로신에도 인산기를 붙이는 이중특이성 키나아제다. 표적 주변에서 뚜렷한 서열 규칙을 거의 가리지 않아 연구진은 이를 극도로 기질 선택성이 낮은 ‘초다기질성 키나아제’로 규정했다.
17분짜리 감염에서 첫 5분에 퍼진 인산화 파동
T7의 용균 주기는 약 17분이다. 세균에 들어가 증식한 뒤 세포를 터뜨리고 한 주기에 약 180개의 파지를 내보내는 짧은 과정이다. T7K는 이 가운데 초반에 집중적으로 움직였다. 감염 5분째 전체 인산화 펩타이드 1만5399개가 검출됐고, 숙주 단백질 2,093개와 파지 단백질 33개에 연결됐다. 인산화 펩타이드는 단백질을 잘게 나눠 분석했을 때 인산기가 붙은 조각을 뜻한다. 이 가운데 T7K가 있어야 증가한 인산화 펩타이드는 1만4663개였으며 숙주 단백질 2,051개와 파지 단백질 33개에 해당했다.
따라서 70.24%라는 수치의 분자는 숙주 2,051개와 파지 33개를 합친 2,084개다. 분모 역시 대장균 유전체가 암호화한 모든 단백질이 아니라 시간추적 실험에서 실제로 발현되고 검출된 숙주 단백질 2,919개와 파지 단백질 48개다. 이를 나누면 숙주는 70.26%, 파지는 68.75%였다. 연구진은 대장균 K-12 BW25113을 37℃에서 배양하고 야생형 T7과 T7K 유전자를 없앤 Δ0.7, 촉매 기능을 잃은 G76F 변이 등을 비교했다. 인산화된 조각을 농축한 뒤 질량분석으로 종류와 양을 추적했다.
이 효소는 오래 켜져 있지도 않는다. 선행연구와 이번 감염 동역학을 종합하면 T7K는 약 6분 안에 자가인산화로 활성을 잃는다. 파지가 자기 단백질까지 광범위하게 변형하는 만큼, 초기에 인산화를 퍼뜨린 뒤 스스로 꺼지는 시간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실험에서는 활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Ser216 위치를 신뢰성 있게 정량하지 못했다.
무작위처럼 넓지만 핵산 주변에는 더 두껍게
T7K는 특정 서열을 거의 가리지 않았지만 완전히 무작위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접힌 단백질 표면에 드러난 잔기가 더 잘 인산화됐고, 세포막과 세포외피 단백질은 상대적으로 적게 표적이 됐다. 숙주 단백질 2천여 개에서 인산화가 검출됐지만 높은 점유율, 즉 같은 종류의 단백질 분자 가운데 많은 비율에 표지가 붙은 표적은 82개였다. 이 중 42개가 DNA나 RNA 같은 핵산에 결합하는 단백질이었다. 넓게 스프레이를 뿌리되 핵산 주변의 스위치에는 더 두껍게 칠한 셈이다.
공간적 편향에는 T7K의 C말단 SO 영역이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리한 SO 영역은 시험관에서 다시 접히는 과정에서 대장균 유전체 DNA가 있을 때 안정화됐지만 총 RNA에서는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SO 영역을 제거한 ΔSO 파지에서는 감염 10분째 인산화 펩타이드가 야생형의 약 31%만 남았다. 약 69%가 줄어든 것이다. 연구진은 SO 영역과 DNA의 상호작용이 T7K를 핵산 결합 단백질 주변에 모으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감염 세포에서 전장 T7K가 DNA의 어느 위치에 붙는지 직접 측정한 자료는 없다. 총 RNA가 분리 SO 영역의 재접힘을 돕지 않았다는 결과만으로 감염 세포 안의 모든 RNA 상호작용을 배제할 수도 없다. RNA 결합 단백질이 많이 표적이 된 현상에는 전사와 번역이 맞물려 일어나는 세균의 특성, 단백질 풍부도와 질량분석 검출 편향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꺼진 방어장치는 일부였다
광범위한 인산화가 실제 방어 실패로 이어지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연구진이 세균 방어계 13종을 시험했을 때 T7을 막은 것은 Retron-Eco6, Retron-Eco9, DarTG1 세 종류였다. T7K는 Retron-Eco9의 방어를 강하게 약화했고 DarTG1은 일부 약화했지만 Retron-Eco6에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13개 방어계를 모두 무력화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인과관계가 가장 뚜렷한 사례는 Retron-Eco9의 독소 단백질 RcaT였다. 감염 5분 뒤 RcaT에서 신뢰도 높은 인산화 위치 17개가 검출됐다. 연구진이 세린을 음전하를 띤 아스파트산으로 바꿔 인산화 상태를 흉내 낸 S155D·S254D·S292D 변이를 만들자 세 변이 모두 방어력을 잃었다. 특히 S155D와 S254D는 단백질량이 줄지 않고도 방어가 사라져 인산화에 따른 기능 억제 해석을 지지했다. S292D에는 단백질 불안정화가 동반됐다. 이 치환법은 인산기의 전하만 일부 흉내 낼 뿐 실제 크기와 구조, 가역성까지 재현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DarTG1에서는 DarT 19곳과 DarG 18곳이 인산화됐다. DarT의 T103D·S65D·T167D 변이는 모두 방어를 없앴지만 단백질량도 함께 감소했다. 인산화가 DarT의 촉매 기능을 직접 차단했는지, 단백질의 접힘이나 안정성을 떨어뜨렸는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인산화 흔적의 수와 기능 정지의 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선이다.
자연 대장균에서는 6개 약화, 1개 강화
실험실 균주 밖에서도 효과는 균일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558개 표본, 536개 고유 균주에서 출발해 품질과 중복을 정리한 529개 표본·513개 고유 대장균을 분석했다. T7이 감염할 수 있었던 균주는 54개였고, 방어 징후가 나타난 22개 가운데 반복 검증을 통과한 것은 17개였다. 최종적으로 T7K는 6개 균주의 방어를 약화했지만 10개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IAI15 한 균주에서는 오히려 T7K가 있을 때 방어가 강해졌다. 인산화나 전사 중단을 감지하는 방어계가 있을 가능성이 제시됐으나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T7K와 가까운 Autographiviridae 계열의 Bas64·Bas65·Bas66·Bas68 파지에서도 광범위한 인산화가 관찰됐지만, 계통이 다른 P1vir의 Doc 키나아제에서는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2024년에는 살모넬라 파지 JSS1의 키나아제에서도 다중 항방어 전략이 보고됐다. 이번 연구는 범용 항방어 키나아제를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라, T7K가 언제 작동하고 얼마나 넓게 인산화를 퍼뜨리며 SO 영역과 자연 대장균의 방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함께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결론은 ‘세균 단백질 전체를 껐다’가 아니다. T7 파지는 짧은 감염 초기에 발현·검출 단백질의 넓은 범위에 인산화를 퍼뜨리고, 핵산 주변 방어 단백질에는 선택적으로 더 강한 압력을 가했다. 이 원리가 치료용 파지 설계에 활용될 수 있는지는 후속 연구에서 검증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환자맞춤형 파지 치료 전략과 표준 선별법, 파지 수용체·부착 단백질 데이터 구축, 임상시험용 품질·비임상 평가 지침 마련이 연구·사업 단계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T7K를 사용한 치료제가 개발됐거나 사람에게 효능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자료: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연세대학교·세브란스병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