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흐트러진 뇌, 맥락은 더 또렷해졌다…사일로시빈이 만든 역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21 07:44
0.91초마다 뇌 활동을 추적하자 휴식·명상·음악·구름영상의 궤적이 갈라졌다
기사 대표 이미지
(사진 출처=U.S. Navy / CWO4 Seth Rossman, 퍼블릭 도메인(미국 연방정부·U.S. Navy 저작물, PDM 1.0))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관악기, 타악기 사이의 경계가 흐려졌는데도 연주 중인 악보가 무엇인지는 전보다 더 잘 구별된다면 어떨까. 사일로시빈(psilocybin·실로시빈으로도 표기)을 투여한 사람의 뇌에서 이와 비슷한 역설이 관찰됐다. 뇌 영역끼리 나뉘어 움직이는 경계는 약해졌지만, 0.91초 간격으로 활동의 흐름을 따라가자 휴식·명상·음악·무음 구름영상이라는 네 상황의 궤적은 더 뚜렷하게 갈라졌다.

모나시대학교 주도 연구진이 2026년 8월 19일 발표한 인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뇌파(EEG)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이를 ‘맥락 정렬’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여기서 정렬은 뇌가 질서정연해졌다거나 여러 참가자의 뇌가 같은 박자로 동기화됐다는 뜻이 아니다. 참가자 한 사람씩 압축한 뇌 활동 자료에서 네 실험 블록의 시점을 기계학습이 얼마나 잘 구분했는지를 가리키는 연구진의 해석이다.

평균에서는 경계가 흐려지고, 시간축에서는 궤적이 갈렸다

기존 분석과 새 결과는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연구진이 시간 전체를 평균해 살펴보자 모든 조건에서 기능적 네트워크 모듈성이 감소했다. 모듈성은 뇌가 비교적 긴밀하게 협력하는 여러 집단으로 얼마나 뚜렷이 나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효과크기 d는 휴식 −0.63, 명상 −0.60, 음악 −0.70, 구름영상 −0.91로, 모든 조건에서 네트워크 경계가 약해졌다.

반면 시간순서를 보존한 분석은 다른 층위의 구조를 드러냈다. 장시간 노출사진에서는 차량 불빛이 뒤섞여 보이지만, 매 순간의 위치를 이어 보면 도로별 이동경로가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332개 뇌 구획의 BOLD 신호를 TR 910㎳, 즉 0.91초마다 측정했다. BOLD는 혈액의 산소 수준 변화를 이용해 뇌 활동을 간접적으로 읽는 fMRI 신호로, 신경세포의 발화를 직접 측정하는 값은 아니다.

이어 CEBRA-Time이라는 기계학습 기반 차원축소법으로 332개 신호를 참가자별 3차원 점과 궤적으로 압축했다. 수백 개 다이얼의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점 하나로 바꾼 셈이다. 이 궤적에서 SVM, 즉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경계선을 찾는 분류 알고리즘이 각 시점을 휴식·명상·음악·구름영상 가운데 하나로 나눴다. 네 조건을 무작위로 찍을 때의 우연수준은 25%였다. 네 조건을 모두 마치고 품질기준을 통과한 54명은 사일로시빈 세션에서 모두 이 수준을 넘었다. 다만 전체 평균 정확도와 독립 시험자료에서의 성능은 제시되지 않았다.

분류정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MEQ30 신비경험 점수도 높았다(r=0.64, P<10⁻⁶, n=54). 다음날 측정한 마인드셋 점수와도 상관이 있었다(r=0.40, P<0.01, n=53). 이는 강한 체험이 분류도를 높였다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급성 주관경험이나 다른 공통 요인이 두 수치를 함께 움직였을 가능성을 가려내지 못했다. 시간평균 모듈성은 두 행동지표와 관련되지 않았다.

19㎎ 투여 뒤 fMRI와 EEG를 차례로 측정

연구는 약 1주 간격의 무투약 기준 세션과 사일로시빈 투여 세션을 같은 사람 안에서 비교한 공개시험이었다. 18~55세 건강한 성인 65명을 모집했고, 2명이 투여 전에 제외돼 63명이 19㎎을 한 차례 경구 투여받았다. 체중당 용량은 0.152~0.388㎎/㎏이었다. 투여 약 80분 뒤 fMRI를 시작하고, 방 이동과 장비 설치를 거쳐 약 150분 뒤 EEG를 시작했다. 두 측정은 동시에 이뤄지지 않았다.

fMRI 조건은 휴식 8분, 안내 명상 6분30초, 음악 11분24초, 구름영상 6분이었다. 논문은 마지막 조건을 ‘movie’라고 불렀지만 참가자가 본 것은 장편영화가 아니라 소리 없이 움직이는 구름 영상이었다. 휴식·명상·음악에서는 눈을 감았고 구름영상에서만 눈을 떴다. 품질관리 뒤 fMRI 표본은 휴식 60명, 명상 59명, 음악 56명, 구름영상 57명으로 달랐으며 핵심 CEBRA 분석에는 54명이 포함됐다.

EEG는 기준 세션 63명, 투여 후 최종 58명을 분석했다. 눈감음 조건에서는 세타·알파·베타 전력이 감소하고 신호 복잡도가 증가했지만, 눈뜬 구름영상에서는 변화가 약했다. 눈뜸과 눈감음 사이 알파 전력 격차는 48% 줄었다(d=−0.79, 분석 참가자 58명; 해당 검정의 n=192는 64채널×3개 눈감음-영상 대비다). 이 결과는 EEG가 fMRI의 네 조건 CEBRA 분류를 재현했다는 뜻이 아니다.

복잡도 증가도 곧바로 ‘무질서’를 뜻하지 않는다. 2014년 제안된 엔트로피 뇌 가설에서 엔트로피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가능한 신경상태의 다양성과 불확실성을 뜻한다. 별도의 2026년 연구가 14개 엔트로피 지표를 비교했을 때 5종은 일관되게 증가했지만, BOLD Lempel–Ziv 복잡도는 분석에 따라 결과가 달랐고 8종에서는 일관된 유의효과가 없었다. Lempel–Ziv 복잡도는 반복되는 신호 패턴을 얼마나 짧게 압축할 수 있는지로 다양성을 가늠하는 방식이다. 뇌 엔트로피는 하나의 숫자로 결론낼 수 없다는 의미다.

‘환경 속에 포함된 느낌’은 아직 해석적 개념

연구진은 자기와 환경의 경계가 약해져 환경 안에 연속적으로 포함된 듯 느끼는 상태를 ‘embeddedness’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공인 진단명이나 검증된 바이오마커가 아니다. 분류 가능성이 높았다는 사실만으로 음악·명상·영상이 고유한 뇌 패턴을 인과적으로 만들었다거나, 뇌가 환경에 동조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탐색적 분석의 분모도 작았다. 고체험 대표 6명의 네트워크 교란분석에서는 약 62%였던 분류정확도가 약 98%까지 높아졌지만, 이는 전체 54명의 평균이 아니다. DMN과 시각망을 기준 신호로 바꾸자 각각 6~8%포인트 낮아졌다. DMN은 외부 과제보다 자기 생각이나 내적 사고와 연관돼 함께 움직이는 기본모드네트워크다. 투여 뒤 정확도 증가분 가운데 DMN 기여도는 22.6%, 시각망은 23.1%로 계산됐지만, 이 비율 역시 분류정확도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고정된 실험 순서와 비맹검 설계, 재현이 남았다

가장 큰 한계는 맥락과 시간의 효과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fMRI는 언제나 휴식, 명상, 음악, 구름영상 순서로 진행됐다. 순서에 따른 선형 실루엣 추세는 유의하지 않았지만(β=0.046, P=0.258), 약효의 시간 변화와 피로 같은 미세한 영향을 배제하려면 조건 순서를 참가자마다 바꾸는 역균형 연구가 필요하다. 구름영상만 눈을 떴기 때문에 눈 상태와 시각자극, 영상 내용, 외부주의의 효과도 구분할 수 없다.

참가자와 연구진은 투여 사실을 알았고 데이터 분석도 맹검하지 않았다. 위약도 없었다. 공개 심사에서는 네 연속 스캔 사이의 차이가 커진 현상을 생물학적 ‘맥락 정렬’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저자들도 SVM을 기전 검증기가 아니라 조건 분리도를 기술하는 판독값으로 설명했다. 훈련·시험 분할이나 교차검증 방법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공개 코드 저장소에서도 CEBRA·SVM 등 헤드라인 분석 코드는 식별되지 않았다. 원자료 공개는 확인됐지만 핵심 분석의 완전한 재현 가능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셈이다.

Usona Institute는 연구용 사일로시빈을 제공했다. 최종 논문은 일부 공저자의 사이키델릭·제약·디지털헬스 기업 지분과 고용·자문 관계도 고지했다. 이는 오류의 증거는 아니지만 결과를 평가할 때 함께 살펴야 할 정보다.

국내 법령에서 사일로시빈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관리된다. 학술연구 취급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마약류취급학술연구자 허가가 필요하다. 이번 결과는 건강한 성인의 단회 투여 기전을 살핀 연구로, 국내 치료 도입이나 우울증 치료효과, 장기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임상시험이 아니다.

이번 연구는 사일로시빈이 뇌를 탈동기화한다는 기존 결과를 뒤집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평균으로 보면 네트워크 경계가 약해지는 동시에, 시간의 순서를 따라가면 실험 조건을 구분하는 궤적이 드러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역설이 실제 맥락 민감성을 뜻하는지는 독립 표본, 역균형 순서, 명확한 기계학습 검증을 갖춘 재현 연구가 답해야 한다.

자료: 모나시대학교·OpenNeuro·국가법령정보센터·국립보건연구원

저작권자 © 한국R&D신문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화학·물리·의학·생명 — 신소재·촉매·양자·물성, 의학·제약·바이오
댓글 0 최신순 추천순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0 / 400 · 회원 로그인 시 닉네임으로 작성 · 비회원 수정은 작성 후 1분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