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노 통로가 짠 ‘제논 원자 큐브’…KAIST, BCC 유사 배열 계산 예측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23 07:57
1.25㎚ 폭 MOF가 흡착 원자의 자리까지 설계…실제 결정화와 분리 성능은 후속 실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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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Jurii / Chemical Elements – A Virtual Museum, CC BY 3.0)

얼음틀에 물을 부으면 틀의 모양에 맞춰 얼음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폭이 1㎚ 남짓한 통로도 원자들의 자리를 정하는 ‘나노미터짜리 얼음틀’이 될 수 있을까. KAIST 연구진은 약 1.25㎚ 폭의 다공성 통로에 들어간 제논 원자들이 정육면체의 여덟 꼭짓점과 한가운데에 놓이는 체심입방(BCC)과 닮은 배열을 만들 수 있다고 계산으로 예측했다. 다만 제논을 실제 물질에 넣어 결정이나 회절무늬를 관찰한 결과는 아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팀은 이미 알려진 금속유기골격체(MOF)인 Co-CAU-36의 1차원 통로 전체에서 제논의 BCC 유사 배열이 이어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공동 제1저자는 김영훈·김도훈 연구자이며 김승우·임윤성 연구자가 참여했다. 연구진 소속은 KAIST와 서울대학교다.

벌크에서 보기 어려운 배열, 통로 안에서는 왜 가능했나

MOF는 금속과 유기 분자가 연결돼 내부에 매우 작은 빈 공간을 만드는 다공성 물질이다. 기체는 이 공극의 벽이나 중심에 달라붙어 머물 수 있다. Co-CAU-36은 2018년 합성과 구조결정이 보고된 코발트계 MOF로, 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통로를 지녔다. 이번 연구진이 새로 합성한 물질은 아니다.

고체 제논의 일반적인 벌크 구조와 비교하면 이번 예측의 특징이 드러난다. 벌크 제논에서 BCC 구조는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선행 계산에서는 25∼30GPa와 2700∼2900K라는 고압·고온 범위에서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번 연구는 제논 자체에 이런 극한 조건을 가하는 대신, MOF 벽이 만드는 반복적인 흡착점으로 원자의 위치를 유도할 수 있는지 살폈다.

연구가 사용한 기준 BCC 격자의 한 변은 4.89Å, 즉 0.489㎚다. 이를 가로로 두 칸 이은 길이는 0.978㎚다. Co-CAU-36에서 계산된 강한 흡착점 사이의 간격은 가로 1.04㎚, 통로 축 방향 0.90㎚였다. 치수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제논 배열이 일부 눌리고 늘어나면서 통로의 반복 구조에 맞춰진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연구진도 이를 완전한 BCC 결정이 아니라 ‘BCC 유사 배열’이라고 표현했다.

1만2493개에서 하나까지, 계산으로 좁힌 후보

연구진은 CoRE MOF 데이터베이스에서 계산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된 구조 1만2493개로 출발했다. 가장 큰 공극의 지름이 7.0Å를 넘고, 통로의 가장 좁은 목이 4.0Å를 넘는 구조만 남기자 3390개로 줄었다. 제논 계산모델의 크기 매개변수는 3.97Å였다. 원자가 들어갈 빈 공간과 이동할 길을 먼저 확인한 셈이다.

3390개 구조에는 대정준 몬테카를로(GCMC·온도와 압력을 정한 뒤 원자가 공극에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확률적으로 모사하는 계산)를 적용했다. 가장 선명한 대규모 선별 조건은 10K·1bar였다. 10K는 약 영하 263.15도로, 벌크 제논이라면 고체 영역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이 조건에서 만들어진 제논 좌표를 이상적인 BCC·면심입방(FCC) 구조와 비교했다.

판별에는 거리분포함수(RDF·원자 사이에서 특정 거리가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지표)와 이웃수(NC·주변 원자의 수와 배치를 기준 구조와 비교한 점수)가 쓰였다. 상위 후보 3개를 다시 살핀 결과 Co-CAU-36 하나에서 뚜렷한 BCC 유사 질서가 남았다. 이어 다면체 템플릿 매칭(PTM·각 원자 주변 모양을 표준 결정구조와 대조하는 분석), 시간평균 밀도지도, 더 큰 계산상자, 서로 다른 힘장과 밀도범함수이론(DFT) 구조최적화로 결과를 재검토했다.

이 검토는 단순히 주기적으로 반복한 작은 계산상자가 배열을 억지로 만들었을 가능성을 줄였다. 대표 흡착점의 계산 에너지와 위치도 DFT 결과와 비교적 가까웠다. 그러나 DFT 검증은 대표 위치와 정적 구조에 한정됐다. 유한한 온도에서 배열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어떤 조건에서 형성되기 시작하는지까지 확정한 것은 아니다.

벽이 첫 자리를 정하고, 제논끼리 빈칸을 채웠다

시뮬레이션에서 배열은 세 단계로 나타났다. 먼저 제논 일부가 통로 벽의 강한 흡착점에 붙었다. 이어 압력과 적재량이 높아지면서 통로의 빈 공간이 채워졌고, 제논–제논 사이의 인력이 더해지자 원자들이 한층 규칙적인 배열로 재조직화했다. 벽이 첫 줄의 자리를 표시하고, 먼저 들어간 제논이 다음 원자가 앉을 위치에 영향을 준 셈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그림은 흐려졌다. 200K·0∼1bar 계산에서는 0.1bar 부근에서 벽 쪽 셸이 먼저 점유됐고, 이후 약한 S자형의 협동 충전 신호가 나타났다. 벌크 제논이 기체인 200K·1bar에서도 통계적으로 선호되는 BCC 유사 모티프는 남았지만, 10K보다 밀도점이 퍼지고 중심의 최대점도 약해졌다. 이를 선명한 BCC 결정이나 특정 압력의 상전이로 단정할 수는 없다.

약 27도인 300K에서는 낮은 압력에서 흡착이 억제돼 연구진이 계산 범위를 0∼1000bar까지 넓혔다. 이 계산이 보여준 것은 저온과 비슷한 고밀도 공극 충전을 얻기 위해 매우 넓은 압력 범위를 살폈다는 사실이다. 상온·저압에서 BCC 배열이 형성됐다거나, 1000bar에서 10K와 같은 배열을 확증했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나 담나’에서 ‘어떻게 줄 세우나’로

Xe 20%·Kr 80% 혼합 계산에서는 또 다른 공간 구조가 나타났다. 제논은 벽 쪽 셸을 차지하고 크립톤은 통로 중심으로 밀렸다. 50·100·150·200K와 1bar를 비교했을 때 공간분리는 100K에서 가장 선명했으며, 별도의 100K 계산은 0.001∼10bar 범위를 살폈다.

계산상 크립톤의 이동 에너지장벽은 셸 경로에서 몰당 6.41㎉, 중심 경로에서 1.46㎉였다. 중심 장벽이 셸의 약 23%, 즉 약 77% 낮았다는 의미다. 이는 벽 차선과 중앙 차선을 나눠 공간과 이동경로를 함께 이용하는 분리 개념을 보여준다. 그러나 장벽의 비율은 실제 이동속도의 비율이 아니다. 확산계수와 투과율, 처리량, 선택도는 측정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계학습과 유전알고리즘으로 BCC·FCC 유사 배열을 목표로 하는 가상 기둥형 MOF도 역설계했다. 토폴로지마다 약 3000개씩, 합계 약 9000개의 가상 구조를 학습자료로 사용했으며 초기 후보 100개를 20세대에 걸쳐 탐색했다. 상위 후보는 명시적 GCMC로 다시 계산했지만 아직 합성되지 않았다. 합성 가능성과 안정성, 활성화 가능성도 실험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제논 흡착량이나 Xe/Kr 선택도의 신기록이 아니다. 지금까지 흔히 묻던 ‘공극에 기체를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에서 더 나아가 ‘담긴 원자들이 어떤 구조로 정렬되는가’를 설계 목표로 삼았다는 데 있다. 흡착된 기체의 구조를 조절하면 공간적 분포와 이동경로까지 함께 설계할 수 있다는 계산상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넘어야 할 검증 단계는 분명하다. 계산용 Co-CAU-36 구조에서는 원래 공극에 있던 DABCO와 물이 제거됐다. 실제 활성화 뒤에도 골격과 통로가 유지되는지, 제논을 넣었을 때 BCC 유사 배열이 회절 실험에서 보이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Xe/Kr 파과시험과 반복 운전, 수분·불순물의 영향, 상온 운전성도 미검증이다. 힘장에 따라 절대 흡착량과 압력별 곡선이 달라져 정확한 격자 간격이나 상경계 역시 확정값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결론은 ‘제논 BCC 결정을 발견했다’가 아니라 ‘MOF 통로를 이용해 BCC 유사 제논 흡착 배열을 만들 가능성을 계산으로 예측했다’는 것이다. 나노 통로가 정말 원자를 위한 얼음틀로 작동하는지는, 이제 실제 Co-CAU-36에 제논을 채우고 구조와 이동을 직접 측정하는 실험이 답해야 한다.

자료: KAIST·서울대학교·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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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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