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600℃서 실패한 AI 레시피, 인간의 힌트로 400℃에서 목표상을 만들다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08.26 07:13
4,407편의 문헌과 계산 후보를 연결한 인간 참여형 폐루프 실험…전고체전지 성능 검증은 다음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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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삼성학술정보관 전경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Adil, CC BY-SA 4.0)

AI도 첫 요리를 태웠다. 600℃에서 3시간 가열하라는 레시피대로 분말을 처리했지만, 만들려던 LiCr(SeO₃)₂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셀레늄과 Li₂CrO₄, Cr₂O₃라는 다른 상이 검출됐다. 연구자는 실패한 X선회절 결과와 함께 “더 낮은 온도가 유리한 것 같다”는 경험을 AI에 돌려줬다. 450℃에서도 목표상과 불순물이 함께 나타났지만, 다시 온도를 낮춘 400℃에서는 X선회절 검출한계 안에서 이차상 피크가 보이지 않는 목표상 패턴을 얻었다.

이 장면은 AI가 혼자 신물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이 전구체를 정하고 분말을 갈아 가열했으며, X선회절 결과를 해석하고 다음 방향을 제시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은 문헌 속 합성 지식을 바탕으로 조건을 제안하고, 실패 결과와 전문가의 판단을 받아 수정안을 내놓았다. 연구팀이 구현한 것은 로봇이 모든 실험을 수행하는 완전자율 실험실이 아니라 ‘LLM 제안→연구자 합성·분석→연구자 피드백→수정 제안→재실험’으로 이어지는 인간 참여형 폐루프였다.

4,407편을 다시 읽은 것이 아니라 ‘레시피 카드’로 바꿨다

성균관대학교·아주대학교·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한국세라믹기술원 연구진은 오픈액세스 논문 4,407편의 초록·실험·결론에서 목표물질, 전구체, 공정, 단계별 조건을 뽑아 구조화했다. 사람이 하루 한 편씩 본다면 약 12.1년 분량이지만, 실제 사용 때 LLM이 논문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정독하거나 새로 학습한 것은 아니다.

질문이 들어오면 RAG, 즉 검색증강생성이 비슷한 합성 레시피를 먼저 찾아 생성 모델에 참고자료로 건넸다. 쉽게 말해 4,407권을 그때마다 펼치는 대신, 미리 만든 레시피 카드 묶음에서 목표와 닮은 카드를 찾아 답안 옆에 놓아준 셈이다. 검색에는 각 자료의 의미를 숫자로 표현한 3,072차원 임베딩이 쓰였다. 데이터에는 고상반응, 기계화학 합성, 소결·치밀화, 열처리·열분해 등 네 가지 주요 공정이 포함됐다.

다만 문헌을 검색해 그럴듯한 답을 반복하는 능력과 실제 합성의 성공률은 다르다. 128편의 시험세트에서 전구체는 53건이 정확히 일치했고, 51건은 문헌과 달랐지만 목표 원소를 포함했다. 저자들은 이를 합쳐 104건, 81.25%로 요약했지만 이는 합성 성공률이 아니다. 온도는 비교 가능한 94건 중 48건만 문헌값의 ±50℃ 안에 들었고, ±100℃ 이내는 69.2%, ±150℃ 이내는 76.6%였다. 시간도 문헌값 이상이면 최고점을 받는 방식이어서 평균점수를 일반적인 정확도로 바꿔 읽을 수 없다. 논문 한 문장에는 시험세트가 129건으로 적혀 있지만, 방법과 반복생성, 결론은 128건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동일한 검색 문맥에서 128개 질문을 각각 30회씩, 모두 3,840회 생성했을 때 전구체 답변의 자기일관성 최빈값은 0.998이었다. 그러나 매번 비슷한 답을 내놓는다고 그 답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LiCr(SeO₃)₂에 대한 첫 600℃ 조건이 실제로 실패했다는 점이 그 차이를 보여준다.

계산이 ‘무엇’을 고르고, LLM과 사람이 ‘어떻게’를 찾았다

연구의 출발점은 Li–M–Se–O 조합으로 만든 660개의 가상구조였다. 밀도범함수이론(DFT)은 원자와 전자의 상태를 계산해 후보 물질의 성질과 안정성을 가늠하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먼저 Kohn–Sham 밴드갭이 2.0 eV보다 큰 구조 418개를 남겼다. 이어 열역학적으로 안정하다고 계산된 E_hull=0 조건에서 23개로 줄이고, 환원한계가 3.0 V보다 낮고 산화한계가 4.0 V보다 높은 구조를 골랐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LiAl(SeO₃)₂, LiCr(SeO₃)₂, CsLiSeO₄ 세 후보였다. 660개 가운데 3개, 0.45%로 약 220개 중 하나만 모든 계산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계산 필터의 통과율일 뿐 실험 성공률이나 상용화 가능성이 아니다. DFT가 ‘무엇을 만들어볼지’를 좁혔다면, 문헌 기반 LLM과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지’를 함께 탐색했다.

대표적인 LiCr(SeO₃)₂ 실험에서는 총 1g의 분말에 LiOH·H₂O, Cr(NO₃)₃·9H₂O, Se를 1대 1대 2 비율로 사용했다. 작은 종이클립 정도 규모의 분말을 15분간 갈아 도가니와 관형로에서 공기 중 가열했다. 600℃ 실패와 450℃ 중간 결과를 거친 뒤 400℃·3시간 조건에서 XRD상 목표상 합성에 성공했다. XRD는 결정에 X선을 쏘아 나타나는 무늬로 어떤 결정상이 있는지 판별하는 방법이다.

주사전자현미경·에너지분산분광법(SEM·EDS)은 크롬·셀레늄·산소가 공간적으로 고르게 분포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분석은 화학식과 결정구조를 완전히 확증하지 않으며, 리튬도 해당 EDS 결과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XRD상 이차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 역시 불순물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정량적인 Rietveld 정련, 조성분석, 리튬 핵자기공명, 독립 연구실 재현은 보고되지 않았다.

다른 후보도 하나의 보편적인 400℃ 공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LiAl(SeO₃)₂는 보충자료에서 350℃와 400℃·각 3시간에 XRD상 단일상으로 보고됐지만, 논문 본문 요약은 하한을 400℃로 적었다. CsLiSeO₄는 400℃에서 Cs₂SeO₄가 생겼고 500℃에서도 불순물이 남았으며, 450℃·3시간에 목표상 패턴을 얻었다.

기존 물질 LiGa(SeO₃)₂에는 별도의 합성 경로를 시험했다. 이 물질은 2013년 단결정 구조가 알려졌고 2022년에는 310℃·48시간의 볼밀·펠릿·아르곤 경로와 실측 전도도가 보고됐다. 이번 연구는 LiOH·H₂O, Ga(NO₃)₃·xH₂O, Se를 사용해 공기 중 350~400℃·3시간으로 합성하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다만 두 경로의 수율·순도·전도도를 같은 조건에서 비교한 것은 아니다.

배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합성법 탐색의 간극을 좁혔다

세 계산 후보는 옥시셀레나이드계 후보인 셀레나이트·셀레네이트에 속한다. 계산상 LiCr(SeO₃)₂의 상온 이온전도도는 0.461 mS·cm⁻¹, LiAl(SeO₃)₂는 약 0.007 mS·cm⁻¹이었다. 두 값 모두 합성 분말에서 측정한 수치가 아니라 원자동역학계산(AIMD)의 고온 결과를 상온으로 외삽한 값이다. CsLiSeO₄에서는 계산 중 리튬 이동이 관찰되지 않아 전도도를 산출하지 못했다.

AIMD가 추적한 시간은 총 70 ps, 0.00000000007초로 약 143억분의 1초에 불과하다. 이 짧은 고온 움직임에서 상온의 장기 거동을 추정한 만큼 실제 측정이 필요하다. 계산상 전압 안정 범위도 LiAl(SeO₃)₂ 약 2.52~4.36 V, LiCr(SeO₃)₂ 약 2.52~4.50 V, CsLiSeO₄ 약 2.15~4.72 V였다. 약 2.5 V 아래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연구팀은 리튬금속과 직접 맞닿는 전해질보다 양극 측 전해질인 캐솔라이트 후보로 해석하고, 별도의 음극 측 전해질로 LLZTO를 두는 구성을 계산했다.

신규성도 좁게 읽어야 한다. 논문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표현한 기준은 Materials Project에 구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논문·특허·결정 데이터와 회절표준 전체에 없다는 뜻이 아니다. LiAl(SeO₃)₂에는 2022년 공개 특허의 합성예가 있고 CsLiSeO₄에는 기존 회절표준이 있으며, LiGa(SeO₃)₂는 앞선 연구가 있다. LiCr(SeO₃)₂는 이번 조사에서 앞선 실험 보고를 찾지 못했지만, 정식 선행기술 조사 없이 세계 최초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번 성과는 전고체전지 완성이나 전해질 성능 입증이 아니다. 신규 후보에 보고된 핵심 실험은 분말 합성, XRD, SEM·EDS와 열중량분석이다. 실측 이온전도도와 전자전도도, 전극 계면저항, 충·방전, 수명, 고율 성능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2026년 8월 26일 현재 논문 공개 후 16일밖에 지나지 않아 직접 재현하거나 반박한 후속연구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미는 분명하다. 계산으로 유망한 구조를 골라도 실제로 어떤 재료를 섞고 몇 도에서 얼마나 가열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난제다. 이번 연구는 그 간극을 문헌 검색과 LLM의 제안, 연구자의 실험과 경험적 판단으로 좁혔다. 첫 답의 실패를 숨기지 않고 다음 실험의 정보로 바꿨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1g 분말의 XRD 패턴을 넘어, 반복 배치와 독립 연구실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실제 전도와 계면에서 배터리 소재로서의 가능성이 확인되는지다.

자료: 성균관대학교·아주대학교·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한국세라믹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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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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