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첫 승리는 어떻게 서열이 되나…전전두엽 별세포가 키운 ‘승리 기억’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26 07:32
낯선 상대를 이긴 뒤 도파민 신호 증폭…승부 실행과 경험의 고정을 분리해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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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Physicl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A4 용지의 긴 변과 거의 같은 30㎝짜리 투명 관에 생쥐 두 마리가 마주 들어간다. 안지름은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3㎝여서 옆으로 비켜설 수 없다. 한쪽이 밀고 다른 쪽이 물러나야 승부가 끝난다. 첫날 첫 대결에서 평균 42.17초 걸렸던 승부는 열 번째에 6.80초로 짧아졌다. 반복 뒤에는 거의 밀지 않아도 늘 물러나던 생쥐가 먼저 후퇴했다. 힘의 차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생쥐의 뇌에는 앞선 승패가 어떻게 남아 다음 대결을 바꾼 것일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공동 연구진은 승부 도중뿐 아니라 승부가 끝난 직후의 뇌를 추적했다. 결론의 중심에는 뉴런이 아닌 별세포가 있었다. 별세포는 별처럼 가지를 뻗은 뇌세포다. 연구진은 낯선 상대에게 이긴 뒤 내측 전전두피질(mPFC) 별세포가 도파민 입력을 받아 신경회로의 반응을 키우고, 승리 경험이 이후 행동에 남도록 돕는 초기 강화 단계를 제시했다. 여기서 ‘승리 기억’은 생쥐가 인간처럼 승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뜻이 아니다. 승리한 장소에 대한 조건장소선호(CPP)와 이후 경쟁 행동으로 정의한 연구진의 조작적 개념이다.

싸움 중에도 반응했지만, 승자에게는 ‘추가 신호’가 있었다

연구 대상은 생후 6~16주 수컷 C57BL/6J 생쥐였다. 연구진은 튜브 검사와 자체 개발한 ‘Tube & CPP’를 결합했다. 생쥐가 승부를 마치면 특정한 조건화 방에서 15분을 보내게 하고, 하루 3회씩 3일간 총 9회의 경쟁과 조건화를 진행했다. 이후 어느 방에 더 오래 머무는지 측정해 승리 장소와 보상 경험 사이의 연합을 살폈다.

생체 광섬유 광도측정으로 세포 신호를 관찰하자 별세포의 칼슘 반응은 버티기와 밀기 중에도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나타났다. 핵심은 싸움 중 반응의 유무가 아니라 승부가 끝난 뒤였다. 낯선 상대에게 이긴 생쥐가 조건화 방에 들어갈 때 승자에게만 추가 칼슘 피크가 나타났다. 칼슘 피크는 세포 안 칼슘 농도가 순간적으로 치솟는 반응으로, 세포가 입력을 받아 활발히 작동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이 반응은 단순히 ‘이겼다’는 사실만 표시하지 않았다. 이미 1위인 생쥐가 익숙한 4위를 다시 이겼을 때는 추가 피크도, 새로운 장소선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방에 머문 비율은 51.26%와 48.74%였다. 그러나 같은 1위가 낯선 동년배를 이기자 추가 반응과 장소선호가 다시 나타났고, 비율은 56.82% 대 43.18%였다. 연구진은 이를 새롭거나 기존 서열 정보를 갱신할 가치가 있는 승리 뒤의 상태 갱신 신호로 해석했다.

도파민과 별세포가 함께 올린 회로의 ‘음량’

연구진이 제시한 모형은 복측피개영역(VTA)에서 시작한다. VTA는 승리 뒤 mPFC로 도파민 입력을 보냈다. 이 도파민이 mPFC 별세포의 D2 수용체를 활성화하면 세포 안 Ca²⁺, 즉 칼슘 신호가 상승했다. 이어 별세포성 소포 방출과 글루탐산성 신호가 커지고, 측좌핵(NAc)으로 뻗는 mPFC 뉴런의 활성과 도파민 반응이 강화됐다. 측좌핵은 이 연구에서 승리 장소와 보상 경험의 연합에 필요한 하류 경로로 확인된 부위다.

별세포는 승리 트로피를 보관하는 USB라기보다 두 조건이 맞을 때 회로의 음량을 올리는 믹서에 가깝다. 실제 경쟁 없이 별세포만 자극했을 때는 CPP가 생기지 않았다. 사회적 승리와 도파민 입력이 함께 들어와야 작동하는 일치검출기이자 증폭기라는 해석이 더 정확하다.

반복 승리가 이어지자 역할의 중심도 달라졌다. 별세포의 도파민·칼슘 반응은 줄어든 반면 mPFC 뉴런의 도파민 반응은 커졌다. 별세포 칼슘 반응은 1일차와 3일차 사이에 유의하게 감소했다. 연구진은 승리 경험을 처음 획득하고 강화할 때는 별세포의 도움이 크지만, 이후에는 뉴런 가소성, 즉 경험에 따라 신경 연결의 반응이 달라지는 성질이 유지의 중심으로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당장 이기는 힘과 승리를 남기는 능력은 달랐다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AAV와 shRNA를 이용해 mPFC 별세포의 D2 수용체 발현을 낮췄다. 수용체를 유전적으로 완전히 제거한 실험은 아니다. 발현을 낮춘 뒤에도 자연스러운 즉석 승률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별세포 D2 신호가 상대를 당장 밀어내는 운동 능력이나 승패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차이는 승리 이후에 나타났다. 정상 대조군은 승리한 방과 다른 방에 머문 비율이 62.44% 대 37.56%였지만, D2 발현 저하군은 50.05% 대 49.95%로 선호가 사라졌다. 다만 대조군에서는 유의했고 저하군에서는 유의하지 않았다는 군 내부 결과이며, 두 효과의 차이를 직접 검정한 상호작용 통계는 제시되지 않았다.

반복 대결에서도 D2 발현 저하군은 싸움시간과 밀기가 충분히 줄지 않았다. 네 마리 집단이 안정된 서열을 만든 비율은 대조군 23우리 중 17우리, 73.9%였지만 저하군은 22우리 중 3우리, 13.6%였다. 여기서 통계 단위는 생쥐가 아니라 우리다. 이 결과는 별세포가 우두머리를 직접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승패 경험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져 집단의 질서로 굳을 가능성이 크게 흔들렸다는 의미다.

회로 수준에서는 mPFC에서 NAc로 향하는 신경 말단을 승리 종료 시점에 억제했을 때 장소선호가 사라졌다. 반면 외측시상하부·등쪽솔기핵·수도관주위회색질·기저외측편도체로 향하는 경로를 같은 방식으로 억제했을 때는 선호가 남았다. 이는 mPFC→NAc 경로가 CPP 형성에 기능적으로 필요하다는 근거다. 특정 별세포가 NAc 투사 뉴런만 감싸는 전용 구조를 이룬다는 뜻도, 이 경로가 장기 서열 유지까지 직접 담당한다는 증명도 아니다.

‘한 번의 승리로 한 달 기억’은 아니다

승자는 조건화를 마친 뒤 24시간 시점에 승리한 방을 57.39% 대 42.61%로 선호했다. 2주 뒤에는 56.97% 대 43.03%, 한 달 뒤에는 56.52% 대 43.48%였다. 그러나 장기 CPP는 한 번의 첫 승리만으로 생긴 결과가 아니라 총 9회의 경쟁과 135분의 조건화를 거친 뒤 측정됐다. 급성 칼슘 피크는 한 경기 종료 시점에 포착됐지만, 이를 곧바로 ‘첫 승리 한 번이 한 달 기억과 사회서열을 만들었다’고 확대할 수는 없다.

분자 기전에도 남은 질문이 있다. 실험은 글루탐산 경로를 강하게 지지했지만 방출된 신호가 오직 별세포 유래 글루탐산뿐이라는 배타적 증명은 완결되지 않았다. 일부 시간차 실험의 표본은 군당 3마리였고, 원시 광섬유 광도측정 자료와 공개 분석 코드도 모두 공개된 상태는 아니다. 튜브 검사가 자연 집단의 공격성이나 지위를 얼마나 반영하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연구 범위는 수컷 C57BL/6J 생쥐에 한정된다. 암컷, 다른 계통, 야생 집단, 영장류나 사람에서도 같은 기전이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2026년 8월 21일 공개된 논문은 동료심사를 통과하고 DOI가 부여됐지만 8월 26일 현재 최종 교정 전 Article in Press 상태이며, 독립 재현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가 분명히 보여준 것은 승패를 실행하는 과정과 그 경험을 다음 행동에 남기는 과정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 별세포는 승자를 정하는 심판이 아니라, 새 승리의 의미가 신경회로에 새겨질 때 잠시 증폭 손잡이를 올리는 세포에 가까웠다.

자료: 서울대학교·아주대학교·고려대학교·럿거스–로버트우드존슨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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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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