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포항 방사광이 찍은 ‘고체→액체→고체→액체→고체’…충전 뒤 남은 Li₂Te₆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08.27 08:14
작동 중인 리튬-텔루륨 전지를 2분 간격으로 추적해 드러난 중간 결정의 ‘구조적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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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Dschwen / Wikimedia Commons, CC BY 2.5)

얼음이 녹았다가 얼고, 다시 녹은 뒤 또 얼어붙는 장면을 배터리 안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공동 연구진이 포항가속기연구소 방사광으로 작동 중인 전지를 들여다보자 텔루륨 양극이 고체에서 액체로, 다시 고체와 액체를 거쳐 마지막 고체로 바뀌었다. 온도만 달라지는 얼음과 달리 이 과정에서는 물질의 화학조성도 함께 변했다. 특히 충전 중 생긴 Li₂Te₆ 결정은 일부가 끝까지 남았다. 다만 사라지지 않는 물질은 아니다. 단순히 5시간 쉬게 했을 때도 일부 회절선이 남았지만, 2.7V를 계속 인가하자 결정이 작아져 결국 X선 회절에서 관측되지 않았다.

전기가 잘 통하는데도 빨리 움직이지 못한 이유

연구 대상은 특정 에테르계 전해액을 사용한 리튬-텔루륨 코인셀이다. 텔루륨의 이론 질량용량은 420mAh g⁻¹이며 이론 부피용량은 2621mAh cm⁻³다. 황이나 셀레늄보다 전자전도도가 훨씬 높다는 정성적 순서도 문헌에서 일치한다. 전자를 잘 흘리지 못하는 문제가 주요 병목일 것이라는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이 전지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앞선 연구들이 제안한 반응경로는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2015년에는 Te와 Li₂Te 사이의 1단계 반응이 제시됐고, 2017년에는 폴리텔루라이드가 개입하는 다단계 반응이 보고됐다. 2023년에는 지름 4~6nm 탄소나노튜브 안에 텔루륨을 가둔 조건에서 2단계 반응이 관찰됐다. 이는 어느 한 연구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전해액과 입자 크기, 탄소에 가둔 정도, 분석법과 시간 분해능에 따라 실제로 포착되는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두 번 녹고 세 번 굳는 다섯 단계

이번 조건에서 연구진이 제시한 방전 경로는 Te 고체에서 시작한다. 이어 장쇄 리튬 폴리텔루라이드 Li₂Teₓ, 즉 6보다 크고 8 이하인 텔루륨 사슬을 가진 용해성 종으로 바뀐다. 다음에는 결정성 고체 Li₂Te₆가 생기고, 이것이 다시 2 이상 6 미만의 단쇄 폴리텔루라이드 액체로 전환된 뒤 최종 고체 Li₂Te가 된다. 고체→액체→고체→액체→고체의 다섯 단계다. 충전은 대체로 이 순서를 거꾸로 따라가지만 방전의 정확한 거울상은 아니었다.

오페란도 XRD, 곧 전지가 실제로 작동하는 동안 결정구조를 읽는 X선 회절에서는 방전이 19% 진행된 D19 이후 약 20도와 29도에서 Li₂Te₆ 회절선이 나타났다. 이 중간 결정은 D71 무렵 사라졌고 최종 생성물 Li₂Te는 D92에서 검출됐다. 반대로 충전에서는 Li₂Te가 충전상태 40%인 S40까지 이어졌으며, Li₂Te₆는 S56 이후 핵생성, 즉 결정이 처음 싹트는 과정을 시작해 S73까지 성장했다. Te 결정은 S81부터 자랐지만 완전 충전에 해당하는 S100에서도 Li₂Te₆ 일부가 남았다.

크기에도 비대칭이 있었다. 0.2C 대표 실험에서 방전 중 생긴 Li₂Te₆는 약 10마이크로미터로 작고 일시적이었지만, 충전 중에는 대표적으로 약 30마이크로미터까지 성장했다. 다음 사이클에서는 남은 결정과 같은 자리 또는 그 주변에서 결정이 다시 나타나는 모습이 관찰됐다. 작은 얼음 조각을 남긴 얼음틀에서 그 주변부터 다시 어는 것과 닮은 ‘구조적 기억’이다. S64의 영상 영역 가운데 S100에도 겹쳐 남은 비율은 96.38%였지만, 이는 영상상 공간영역 지속률이다. Li₂Te₆ 질량이나 결정 개수의 96.38%가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X선 영화가 직접 본 것과 추론한 것

연구진은 오페란도 XRD로 결정성 Te·Li₂Te₆·Li₂Te를 직접 식별했다. 투과 X선 현미경 TXM은 10keV X선을 이용해 2분 간격으로 입자의 생성과 소멸 위치, 형태 변화를 추적했다. 전지를 멈추고 뜯은 전후 사진이 아니라 반응이 진행되는 동안 찍은 X선 영화에 가깝다. SEM·TEM·SAED·3차원 CT로 꺼낸 전극의 형태와 결정구조도 보강했다.

다만 액체 상태의 모든 화학종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다. 광학영상은 적갈색의 용해성 종이 퍼지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사슬 길이를 판별하지는 못했다. XRD 피크가 사라진 D71부터 Li₂Te가 나타난 D92 사이를 단쇄 폴리텔루라이드 구간으로 배정한 것도 여러 관측을 합친 간접 해석이다. 이 구간에 검출한계보다 적은 비정질 고체까지 전혀 없었다는 증명은 아니다. TXM 역시 위치와 모양을 추적했을 뿐 화학식을 단독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계산은 충전과 방전의 차이를 뒷받침했다. DFT, 원자 수준의 에너지를 계산하는 밀도범함수이론에서 방전 방향 Li₂Te₇→Li₂Te₆와 Li₂Te₆→Li₂Te₅의 장벽은 각각 0.26eV와 0.18eV였다. 충전 방향 Li₂Te₅→Li₂Te₆와 Li₂Te₆→Li₂Te₇은 각각 0.37eV와 0.47eV였다. 반응이 넘어야 할 에너지 언덕이 충전 쪽에서 더 높게 계산된 셈이다. kMC, 개별 반응 확률을 시간 흐름으로 모사하는 운동학적 몬테카를로 계산도 중간체의 농도와 체류시간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모델들이 실제 공간에서의 핵생성 밀도나 약 30마이크로미터와 10마이크로미터의 크기 차이를 독립적으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새 소재보다 충전법을 바꿨지만, 상용화와는 거리

관찰 결과가 가리킨 병목은 텔루륨의 전자전도도가 아니라 Li₂Te₆의 핵생성·성장·재용해였다. 연구진은 이에 맞춰 방전은 1C로 하고, 충전은 1C로 1.9V까지 진행한 뒤 0.1C로 낮춰 2.7V까지 올리는 방법을 시험했다. 30번째 사이클 용량은 수정 충전법에서 191.07mAh g⁻¹, 전 구간을 일정한 1C로 충전한 조건에서는 20.92mAh g⁻¹이었다. 새 물질을 넣지 않고 충전 후반을 늦춰 남은 중간체의 전환을 유도한 결과다.

그러나 이 비교는 공개된 조건별 단일 용량 궤적이다. 독립 셀 수와 셀 간 편차, 오차막대, 통계검정이 제시되지 않아 차이의 반복성을 판단할 수 없다. 후반 전류를 0.1C로 낮춘 만큼 충전시간과 출력에도 대가가 따른다. 30사이클 결과를 장기수명이나 상용 성능으로 확대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실험 조건 자체도 기전 관찰에 맞춰져 있다. 주 셀은 Te:Super P:PVDF를 8:1:1 질량비로 구성하고 약 3mg cm⁻²의 텔루륨을 지름 11mm 전극에 올렸다. 리튬 금속 상대전극과 셀당 160마이크로리터의 전해액을 사용해 명목 전해액비가 약 56.1마이크로리터 mg⁻¹Te에 이르는 침수 조건이다. 5마이크로리터 mg⁻¹의 희박 전해액 보조실험에서는 첫 방전 평탄부와 결정의 생성 시점·크기·형태가 달라졌으며 분리막도 함께 바뀌었다. 따라서 전해액 양만의 영향으로 분리할 수도, 희박 조건에서 같은 5단계가 완전히 재현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연구의 핵심은 새로운 전지가 곧 상용화된다는 선언이 아니다. 전압이 가해지는 비평형 환경에서 나타난 준안정 중간체 Li₂Te₆가 충·방전 이력에 따라 다르게 자라고 일부 남는 과정을 실제 작동 중 포착했다는 데 있다. 텔루륨처럼 전자가 잘 흐르는 물질에서도 중간 결정의 구조적 기억이 반응속도와 활물질 이용을 가로막을 수 있으며, 소재 구성뿐 아니라 충전 과정 자체도 이를 제어하는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음 과제는 희박 전해액·고로딩 풀셀과 더 긴 수명 조건에서도 같은 기전과 충전법의 효과가 반복되는지 검증하는 일이다.

자료: 고려대학교, 포항가속기연구소, 한양대학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텍사스A&M대학교, 오하이오주립대학교, Springer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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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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