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의궤의 색, 1,299명 의복 데이터로 읽었다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08.28 05:32
연세대 연구팀, 1759년 왕실 혼례 반차도 50면에서 대표색 추출…행렬 속 권력과 질서의 구조 분석
기사 대표 이미지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본관 일대 파노라마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Allen R Francis, Public domain)

조선 왕실 혼례 행렬에 그려진 1,299명의 옷 색깔을 데이터로 바꾸자, 기록화 속에 배치된 색의 구조가 수치로 드러났다. 연세대학교 통합디자인학과 이지현 교수팀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를 디지털 이미지로 분석해 왕실 의례복의 대표색과 공간별 분포를 살폈다.

제1저자인 신미라 연구원과 이지현 교수가 쓴 논문 제목은 ‘The Color of Power and Order’다. 논문은 국제 학술지 ‘Color Research & Application’ 51권 4호에 실렸으며, 2026년 7월 17일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연구 대상은 영조와 정순왕후의 1759년 5∼6월 가례를 기록한 의궤 2권이다. 가례는 왕실의 혼례 의식을 뜻한다. 연구진은 의식 참가자의 순서와 모습을 길게 그린 반차도 50면을 분석했다. 전체를 이어 붙인 길이는 약 16m이며, 한 면의 크기는 33.8×47.2cm다.

분석에는 한 면당 5820×3800픽셀, 300dpi, 약 63.3MB인 디지털 이미지가 사용됐다. 이는 실제 왕실 복식의 섬유나 염료를 측정한 연구가 아니라, 반차도에 그려진 의복 영역에서 대표색을 추출한 연구다. 연구진은 머리 장식과 휴대품, 피부, 배경을 제외해 분석 대상을 옷으로 한정했다.

국왕과 왕비를 제외한 등장인물은 남성 1,269명과 여성 30명으로 모두 1,299명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을 복식과 행렬의 구성에 따라 241개 집단으로 묶었다. 단색 의복을 입은 190개 집단 954명에는 K-평균의 군집 수를 4개로, 여러 색을 사용한 51개 집단 345명에는 5개로 설정했다. K-평균은 이미지에 나타난 수많은 색을 서로 가까운 색끼리 묶어 대표색을 찾는 방식이다.

인원 기준으로는 적색 계열이 605명, 전체의 46.6%로 가장 많았다. 녹색 계열은 216명으로 16.6%, 황색 계열은 177명이었다. 그림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 색을 분류함으로써, 긴 행렬에서 어떤 색이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비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연구진은 행렬을 국왕을 중심으로 R0부터 R7까지 8개 동심 구역으로 다시 구성했다. 동심 구역은 물결처럼 중심에서 바깥으로 차례로 나눈 공간이다. 이를 통해 국왕과 가까운 위치와 먼 위치에서 색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했다. 논문은 이 반차도를 국왕과 왕비의 합동 행렬을 그린 현존 최고(最古)의 반차도로 설명했다.

이번 분석은 전통색을 몇 가지 이름으로만 소개하지 않고, 사람 수와 집단, 공간적 거리라는 기준을 함께 적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왕실 기록화의 색채를 정량적으로 정리해 복식과 행렬의 질서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분석 틀을 제시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가 속한 조선왕조 의궤는 왕실 주요 의식의 과정과 구성을 기록한 자료다. 유네스코가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대상도 특정 의궤 한 책이 아니라 ‘조선왕조 의궤’ 컬렉션 전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외규장각 의궤는 1993년 1책과 2011년 296책 등 모두 297책이 국내로 들어왔다. 현재 안내 자료에는 이 가운데 291책이 임금이 열람하도록 만든 어람용 의궤로 기록돼 있다. 박물관은 2015년 297책 전체의 원문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했다. 디지털로 구축된 기록은 긴 반차도의 색과 인물을 같은 조건에서 살펴보는 이번 연구의 기반이 됐다.

자료: 연세대학교, Wiley, 유네스코, 국립중앙박물관

저작권자 © 한국R&D신문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재료·대학·교육·경제·특허 — 신소재, 대학·교육 정책, 투자·정책자금, 지재권
댓글 0 최신순 추천순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0 / 400 · 회원 로그인 시 닉네임으로 작성 · 비회원 수정은 작성 후 1분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