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카고서 대전 RAPIDO 원격 작동…별도 랫드 실험서 뇌 약물·빛 조절 검증

시카고에서 버튼을 누르자 10,596km 떨어진 대전의 작은 신경 장치가 약 0.109초 뒤 작동했다. 지구 둘레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건넌 명령이었다. 다만 109ms는 뇌의 반응시간이 아니라 인터넷 통신과 장치 작동에 걸린 지연이다. KAIST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RAPIDO’는 생각을 읽는 장치도, 사람을 치료한 임플란트도 아니다. 실험용 랫드(rat)의 정해진 뇌 지점에 극소량의 약물과 파란빛을 보내는 ‘원격 주사기와 전등’에 가깝다.
RAPIDO는 ‘원격 작동·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약물 전달 및 광자극 임플란트’를 뜻한다. 연구진은 시카고에서 대전의 RAPIDO 시스템을 원격 작동했고, 별도의 랫드 실험에서는 뇌 내 코카인 투여에 따른 움직임과 광유전학적 세포신호 조절을 각각 검증했다. 중요한 점은 이 세 장면이 하나의 통합 실험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카고에서 대전의 살아 있는 랫드 뇌에 코카인을 넣고 동시에 빛을 비췄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뇌 속 각설탕 아닌, 머리 위 초소형 실험실
장치는 크게 세 부분이다. 랫드의 측좌핵에 양쪽으로 삽입하는 광·유체 프로브, 물의 전기분해로 압력을 만드는 마이크로펌프와 교체·재충전식 약물 카트리지, 배터리와 BLE 회로가 들어간 탈착식 머리 장착 모듈로 구성됐다. BLE는 가까운 거리에서 기기끼리 명령을 주고받는 저전력 무선통신이다.
각설탕에 가깝다는 비유는 머리 위에 붙였다 떼는 상단 모듈에만 해당한다. 크기는 11.8×9.4×11mm, 무게는 1.4g이다. 전체 조립체는 7.3mm 프로브를 포함해 약 11.8×9.4×24.4mm, 2.5g이다. 뇌에는 이 덩어리 전체가 아니라 가느다란 프로브 끝이 들어가며, 하단 프로브 조립체가 만성적으로 남는다. 빛을 내는 470nm 청색 LED의 두께는 50μm로 인간 머리카락 굵기 범위와 겹치는 수준이다.
약물 장치는 빛만 켜는 장치보다 구조가 복잡하다. 약을 담을 저장고와 흘려보낼 유로, 정해진 양을 미는 펌프가 필요하고, 약을 다시 채우면서 역류와 오염도 억제해야 한다. RAPIDO는 물을 전기분해해 만든 작은 기포로 주름진 Parylene C 벨로를 부풀리고, 이 힘으로 약물을 밀어낸다. 최고 단계의 펌프 전력은 약 0.86mW였고, 실측 유량은 분당 1.1∼2.5μL였다. 입증된 1회 투여량은 0.5∼2.5μL다. 0.5μL는 5mL 티스푼의 약 1만분의 1에 불과하다.
전원을 끄면 기체가 다시 물로 합쳐지면서 약물이 뒤로 끌릴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억제하기 위해 일방향 밸브를 넣었다. 밸브는 순방향에서 26kPa를 넘으면 열렸고, 역방향에서는 85.9kPa를 넘어야 열려 압력 차이가 3.3배였다. 이는 역류에 더 잘 버틴다는 뜻이지 어떤 조건에서도 역류가 전혀 없다는 증명은 아니다. 약물 카트리지는 3∼5초 안에 교체하거나 재충전할 수 있어, 약이 떨어질 때마다 프로브를 다시 심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명령과 살아 있는 동물 실험, 증거는 나눠 봐야
RAPIDO 자체가 인터넷에 직접 접속하는 것은 아니다. 명령은 원격 연구자에서 웹서버로, 다시 실험실의 Raspberry Pi 4와 BLE를 거쳐 장치에 전달된다. 같은 공간에서 IoT 작동 지연은 약 54ms였고, 시카고–대전 10,596km 실시간 작동은 평균 약 109ms였다. 명령을 현지 게이트웨이에 미리 저장하는 예약 실행의 대륙간 지연은 약 55.8ms였다. 가까운 거리의 BLE는 0∼20m에서 실측됐으며, 10m 안에서는 지연이 50ms 미만이었다.
그러나 공개된 대륙간 시연 사진에서 직접 확인되는 것은 벤치 위 광·유체 프로브의 LED가 켜진 모습이다. 그 장면에는 살아 있는 랫드나 뇌 안에서 약물이 나오는 모습이 없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랫드의 장치를 인터넷으로 즉시 또는 예약 작동한 영상도 있지만, 화면에 표시된 사무실과 동물실의 거리는 490.65m다. 따라서 ‘대륙간 원격 작동’과 ‘살아 있는 랫드에서의 인터넷 작동’은 각각 입증됐지만, 이를 시카고에서 대전 랫드의 뇌를 직접 조절한 하나의 실험으로 합쳐서는 안 된다.
원격화가 완전 무인화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약물을 채우고 카트리지와 상단 모듈을 부착하며 동물을 관리하고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일은 현장 인력이 해야 한다. 이 장치는 뇌 신호를 측정하거나 AI가 상태를 판단하는 폐루프 시스템도 아니다. 센싱과 생각 해독 없이 연구자가 정한 명령이나 예약에 따라 약물과 빛을 보내는 단방향 자극 플랫폼이다.
코카인 주입과 청색광 검증은 서로 다른 랫드에서
약물 전달 성능은 수컷 Sprague–Dawley 랫드의 측좌핵에 코카인을 직접 넣은 움직임 실험으로 확인했다. 식염수군 6마리와 코카인군 6마리에 장치를 이식하고 2·3·4주 뒤 반복 측정했다. 저용량은 좌우 합계 0.5μL에 코카인 10μg, 고용량은 합계 2.5μL에 50μg이었다. 투여 뒤 60분 동안 움직임을 10분 구간으로 나눠 살폈으며, 이때 장치를 조작한 수단은 현장의 스마트폰 BLE였다.
고용량과 저용량 사이 움직임 변화량은 코카인군과 식염수군 사이에서 2주 P<0.001, 3주 P=0.018, 4주 P=0.034로 차이가 났다. 4주차 고용량 구간의 약물 주효과는 P=0.003이었다. 다만 주차에 따른 변화 회귀의 P값은 0.408이었다. 이는 작은 표본에서 유의한 표류를 검출하지 못했다는 결과이지, 효과가 4주 동안 전혀 줄지 않았음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빛 실험에는 다른 랫드들이 쓰였다. 연구진은 D2 도파민 수용체 발현 세포에 Opto-RhoA 렌티바이러스를 넣고, 470nm 청색광으로 세포 안의 RhoA–ROCK 신호를 활성화했다. 흔히 떠올리는 ‘빛으로 뉴런 발화를 켜고 끄는 스위치’와는 다른 조작이다. 조건장소선호 실험에서는 코카인과 연결된 공간을 랫드가 얼마나 선호하는지 비교했다.
이 실험의 코카인은 RAPIDO로 뇌에 넣은 것이 아니라 체중 1kg당 20mg을 복강주사했다. RAPIDO는 측좌핵에 빛만 전달했으며, 3분 켬과 3분 끔을 반복했다. 식염수군·코카인군·코카인과 빛을 함께 받은 군은 각각 4마리였다. 코카인과 연결된 장소의 체류시간은 세 군 사이에서 차이가 났고 P=0.012였다. 코카인 단독군과 코카인·빛 병행군의 차이는 P=0.034로, 빛을 받은 군의 장소 선호가 더 약했다. 하지만 실제 광 펄스 주파수와 조직 안의 광세기는 보고되지 않았고, 군당 4마리의 소규모 결과라는 한계가 있다.
‘최초’보다 통합에 의미…사람 적용까지는 긴 거리
무선으로 약물과 빛을 전달하거나 인터넷으로 신경장치를 제어한 연구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RAPIDO의 차별점은 저전력 정량 전기분해 펌프, 역류 저항 밸브, 3∼5초 교체·재충전 카트리지, BLE와 IoT 제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었다는 데 있다. 새로운 뇌 현상을 발견했다기보다, 여러 기능을 장기간 분산 동물실험에 쓸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하고 검증한 공학 연구다.
검증 범위는 신중히 읽어야 한다. 실제 동물실험은 최장 4주였고, 약물시험은 군당 6마리, 조건장소선호는 군당 4마리였다. 수개월이나 수년에 걸친 감염, 재료 열화, 유로 막힘과 바이러스 발현 안정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생후 6주 수컷 단일 계통 랫드만 사용했기 때문에 암컷이나 다른 연령·종, 영장류와 환자에서의 안전성과 효과도 알 수 없다.
RAPIDO는 현재 사람의 중독을 치료한 장치도, 곧바로 임상에 옮길 BCI도 아니다. 지금 확인된 성과는 약물과 빛이라는 두 자극 수단을 작은 장치에 넣고, 현장 BLE와 인터넷을 통해 정해진 방식으로 작동시킬 수 있음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사람 치료에 대한 성급한 전망보다, 연구자가 방에 들어가 자극하는 순간을 줄이고 여러 장소의 동물실험을 일정한 명령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연구도구라는 범위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자료: KAIST·연세대학교 의과대학·미국과학진흥협회(AA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