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64개 코돈은 그대로, 통역사는 22종으로…로봇이 돌린 ‘세포 밖 유전암호 실험실’

64개 코돈을 읽는 tRNA 체계를 22종으로 압축했다. 컴퓨터 키보드에 비유하면 64개 키를 없앤 것이 아니라, 같은 글자를 입력하던 중복 키들을 한 명의 통역사가 함께 읽도록 정리한 것이다. 하버드의과대학과 하버드대 위스연구소 연구진은 이렇게 정리한 자리 가운데 설계상 최대 14개 재할당 채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세포 밖 유전암호 실험실’을 만들었다.
다만 숫자만 보고 64개 유전암호를 22개로 줄였다고 이해하면 핵심을 놓친다. 자연 유전암호의 64개 코돈, 즉 단백질 합성 지시를 담은 세 글자짜리 RNA 단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가운데 61개는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센스 코돈이고 3개는 번역을 멈추게 하는 종결 코돈이다. 연구진이 줄인 것은 이 단어들을 읽어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tRNA의 종류다.
중복된 암호를 묶어 새 의미가 들어갈 공간을 찾다
압축 체계는 표준 아미노산을 이어 붙이는 tRNA 20종, 단백질 합성을 시작하는 메티오닌 tRNA 1종, UAG를 읽어 pAzF를 넣는 억제 tRNA 1종으로 구성됐다. 안티코돈을 기준으로 세면 센스 코돈을 읽는 tRNA 21종과 UAG용 tRNA 1종, 모두 22종이다. pAzF는 para-azido-L-phenylalanine이라는 비표준 아미노산, 곧 자연의 일반적인 단백질 합성 체계 밖에서 별도로 지정한 분자다.
이 압축이 가능한 이유는 워블 규칙에 있다. 워블은 tRNA 하나가 코돈 하나만 엄격하게 읽지 않고, 세 번째 글자가 다른 여러 코돈을 묶어 읽을 수 있는 현상이다. 여러 중복 키를 한 손가락으로 누르는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고려하면 새로운 의미를 배정할 통로가 설계상 최대 14개 남는다고 계산했다. 일부 통로는 둘 이상의 삼염기 코돈과 연결되므로, 완전히 독립된 단일 코돈 14개가 비었다는 뜻은 아니다. 논문에서 사용한 ‘34-코돈 유전암호’도 이론 설계의 명칭이지, 34종 아미노산이나 34개 아미노아실-tRNA 합성효소를 실제로 구축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직교 리보솜·tRNA, 즉 기존 번역계와 섞이지 않는 별도 짝의 원리 자체는 앞서 제시됐다. 같은 CGA 꼬리 tRNA와 변형 리보솜의 조합은 2014년 정제 무세포 번역계에서 보고됐고, 2019년에는 20개 센스 코돈을 20개 연장 tRNA와 개시 tRNA로 번역하는 축소 암호가 나왔다. 이번 연구의 새로움은 최초의 직교 번역계라는 데 있지 않다. 자연 충전효소가 들어 있는 대장균 추출물에서 이 체계를 작동시키고, 후보 설계부터 제작·번역·정제까지 자동화한 데 있다.
tRNA와 리보솜을 함께 바꾼 ‘전용 플러그와 콘센트’
tRNA는 한쪽에서 코돈을 읽고 다른 쪽 꼬리에 아미노산을 매단다. 연구진은 대장균의 아이소억셉터 tRNA 48종, 즉 같은 아미노산을 운반하면서 서로 다른 코돈을 읽는 tRNA들의 3′ 말단 74·75번 염기를 바꾼 768개 설계를 조사했다. 48종마다 두 염기의 조합 16개를 시험한 규모다. 그 결과 보존된 꼬리 CCA를 CGA로 바꾼 tRNA 상당수도 아미노아실-tRNA 합성효소(aaRS·알맞은 아미노산을 tRNA에 붙이는 효소)가 충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정상 리보솜은 CGA 꼬리 tRNA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단백질 조립 기계인 리보솜의 23S rRNA에서 G2251C와 G2553C 두 변이를 함께 도입했다. tRNA 플러그의 CCA를 CGA로 바꾸고 리보솜 콘센트의 접점도 맞춰 바꾼 셈이다. 변형 리보솜은 CGA-tRNA를 선택적으로 수용했고, 기존 번역계 옆에 구별되는 통로가 생겼다.
이 과정에는 Opentrons OT-2 액체처리 로봇이 투입됐다. 로봇은 연구진이 Python과 Jupyter로 작성한 절차에 따라 DNA와 tRNA를 만들고 액체를 옮기며 정제·번역 반응과 펩타이드 정제를 연결했다. 가설을 세우거나 새로운 암호를 자율적으로 발명한 인공지능 과학자는 아니었다. 핵심 번역 반응도 50µL, 물 한 방울 정도의 시험관 규모에서 30℃로 18시간 진행됐다. 연구진은 손작업이 약 12시간에서 1∼2시간으로, 전체 작업은 약 1주에서 1일로 줄었다고 추산했지만 독립적인 수동·자동 비교시험으로 측정한 값은 아니다. ‘300배 이상’ 역시 암호공간 확대와 충전 향상, 자동화 배수를 곱한 저자 계산상 잠재치다.
한 문장을 두 통역사가 서로 다른 사전으로 읽었다
실제 시험에는 두 압축 암호가 쓰였다. MP1은 tRNA 21종으로 UCC를 세린 대신 알라닌으로, GCG를 알라닌 대신 세린으로 읽었다. MP2는 여기에 UAG용 tRNA를 더한 22종 체계로 UAG에 pAzF를 배정했다. 한 시험관에 정상 리보솜과 변형 리보솜을 함께 넣자 두 체계가 같은 mRNA 문장을 서로 다른 사전으로 읽어 별도 펩타이드를 만들었다.
검증의 범위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질량분석으로 조사한 것은 pAzF 산물이 아니라 MP1이 만든 32개 아미노산 길이의 ELP-SAS 펩타이드였다. 이 특정 서열에서는 알라닌과 세린이 섞인 혼성 산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이는 분석 감도 안에서 교차 산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며, 모든 서열에서 번역 오류가 0이라는 증명은 아니다.
UAG에 pAzF를 배정한 실험은 발광 리포터로 간접 측정했다. 저자는 발광이 약 6배라고 기술했지만 원시값 평균 9만5571과 2만508의 단순비는 4.66배이고, 배경을 빼면 7.35배다. 약 6배를 산출한 정확한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pAzF가 없는 조건에서도 높은 배경 발광이 나타났으며, 연구진은 pAzFRS가 표준 아미노산을 잘못 충전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pAzFRS를 제거하자 신호는 배경 수준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pAzF의 정확한 삽입률과 오삽입률은 직접 질량분석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14종 분자를 만든 생명체가 아니라 후보 암호를 거르는 시험대
이번 결과는 살아 있는 세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대장균 세포추출물을 이용한 무세포 번역 실험이며, 안정적으로 증식하는 22-tRNA 생물체나 재암호화 게놈을 만들지 않았다. 실제로 바꾼 코돈은 UCC·GCG·UAG 등 최대 3개이고, 넣은 비표준 아미노산도 pAzF 한 종이다. 설계상 최대 14개 채널은 앞으로 시험할 공간이지, 비표준 분자 14종을 동시에 넣었다는 실적이 아니다.
생산성도 정상 체계를 앞서지 못했다. 세포추출물 안에서 정상 리보솜과 변형 리보솜이 공존했고 정상 암호 펩타이드가 더 많이 만들어졌다. 분석한 펩타이드는 32개 아미노산으로 짧았으며, 수백에서 1000개가 넘는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효소나 항체의 접힘·기능·수율·장기 안정성은 시험하지 않았다. 주요 tRNA 분석의 독립 반복은 2회, 발광시험은 3회였고 사전 검정력 산정과 무작위 배정, 맹검도 없었다.
환경 유출이나 수평전달, 장기간 진화를 시험하지 않았으므로 생물안전성이 입증된 것도 아니다. 연구진은 변형 tRNA를 RNA로 공급하고 환경 생물에서는 꼬리가 CCA로 다시 가공될 수 있다는 봉쇄 논리를 제시했을 뿐이다. 공개 후 6일이 지난 2026년 9월 1일 기준으로 독립 연구진의 재현 성공이나 실패도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 일부는 관련 특허의 발명자로 공개됐고, 일부는 관련 기업 창업자다.
국내에서는 포항공과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 연구진의 i-POPFLEX가 가장 가까운 사례다. 이 플랫폼은 34개 번역인자와 분할 T7 RNA중합효소를 자동 조립해 구성요소를 선택적으로 빼거나 바꾼다. AGENTEX와 같은 기술은 아니지만 무세포 번역과 자동화, 코돈 재배정이라는 기반을 공유한다. i-POPFLEX는 조건별 최대 8.4배의 단백질 수율과, 장비비·인건비를 제외한 시약비 기준 약 96% 절감을 보고했다.
따라서 이번 성과의 당장은 ‘14개의 새 분자를 만드는 생명체’가 아니다. 살아 있는 세포에 옮기기 전에 어떤 축소 암호가 작동하고 어디에서 충돌하는지를 작은 반응계에서 빠르게 걸러내는 자동화 시험대다. 14개 잠재 채널이 실제로 서로 간섭하지 않는지, 긴 단백질에서도 정확성과 생산성을 유지하는지, 비표준 분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지는 이제부터 답해야 할 질문으로 남았다.
자료: 하버드의과대학·하버드대 위스연구소·포항공과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국가법령정보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