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메리카치타’는 치타가 아니었다…고대 DNA가 확인한 퓨마의 자매계통

퓨마라고 적혀 있던 오래된 뼈의 정체가 DNA 검사 뒤 전혀 다른 멸종동물로 바뀌었다. 캐나다 유콘에서 발견된 약 3만1천~3만4천 년 전 화석 세 점은 발견 위치와 형태 때문에 퓨마로 잠정 분류돼 있었다. 그러나 고대 DNA를 분석하자 이 뼈들은 ‘아메리카치타’로 불려온 멸종 고양잇과 미라키노닉스 트루마니(Miracinonyx trumani)의 것으로 확인됐다. 더 뜻밖의 단서는 먹이에서 나왔다. 치타처럼 긴 다리로 육상 초식동물을 쫓았을 것이라는 익숙한 그림과 달리, 유콘 개체들은 수생 먹이를 지속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연구가 미라키노닉스를 곧바로 퓨마로 바꾼 것은 아니다. 핵유전체 분석 결과 이 동물은 현대 퓨마와 가장 가까운 별도의 멸종 계통, 즉 퓨마의 자매계통으로 확인됐다. 두 계통은 약 260만 년 전 갈라진 것으로 추정됐고, 미라키노닉스와 현대 아프리카치타 계통의 공통조상은 약 4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름과 생김새는 치타를 떠올리게 하지만 혈통은 퓨마 쪽에 훨씬 가까웠던 셈이다.
미토콘드리아의 단서, 핵유전체로 다시 확인하다
미라키노닉스가 퓨마와 가깝다는 주장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1979년 형태학 연구는 현대 치타와의 가까운 관계를 주장했지만, 2005년에는 와이오밍 화석에서 얻은 미토콘드리아 DNA 1,302염기쌍을 토대로 퓨마 자매군이라는 결과가 제시됐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주로 어머니를 통해 전달되는 작은 유전정보다. 이번 연구는 세포핵에 담긴 훨씬 넓은 유전정보인 핵유전체를 확보해 기존 결론을 강하게 보강했다.
연구 표본은 유콘 3점과 미국 와이오밍 내추럴 트랩 동굴 3점 등 모두 6점이었다. 이 가운데 방사성탄소 연대와 DNA 분석 대상은 유콘 3점과 와이오밍 1점이었다. 핵심 계통·집단 분석에는 약 38배와 22배 피복도의 고유전체 두 점이 쓰였다. 피복도는 유전체의 같은 자리를 평균 몇 번 읽었는지를 뜻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손상되고 잘게 끊긴 고대 DNA에서도 염기 정보를 더 안정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생 고양잇과 9종과 미라키노닉스를 비교하고, 상염색체를 1만 염기쌍씩 나눠 계통 관계를 계산했다. 그 결과 종 계통수의 모든 갈림점에서 100% 쿼텟 지지도를 얻었다. 쿼텟 지지도는 네 계통씩 묶어 반복 비교했을 때 특정 계통 구조를 얼마나 일관되게 지지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유콘 표본은 미라키노닉스의 알려진 분포도 위도 20도 이상 북쪽으로 넓혔다. 단순 거리로 환산하면 약 2,200㎞로, 서울과 부산의 직선거리 약 일곱 배에 해당한다. 다만 이는 실제 이동거리나 연속된 서식지의 길이가 아니다. 블루피시 동굴은 북위 67도09분으로 북극권 안쪽이지만, 쿼츠 크리크의 두 표본은 북위 63도49분으로 북극권 남쪽에서 발견됐다.
400㎞와 2천 년을 건너 반복된 높은 질소 신호
뼈 속 콜라겐은 동물이 오랫동안 먹은 것의 화학적 흔적을 남긴다. 유콘 세 개체의 벌크 콜라겐 δ¹⁵N은 15.5~15.8‰로, 같은 시대 지역의 육상 포식자와 먹이보다 약 6‰ 높았다. δ¹⁵N은 무거운 질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나타내며, ‰는 퍼밀, 즉 천분율 단위다. 여기서 6‰ 차이는 물고기가 식단의 6%나 60%였다는 뜻이 아니라 먹이사슬을 거치며 축적된 질소의 차이를 가리킨다.
세 표본은 서로 약 400㎞, 시간으로는 2천 년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도 δ¹⁵N과 δ¹³C 값의 표준편차가 각각 0.1‰에 그쳤다. 한 번 우연히 먹은 먹이보다 지역에서 되풀이된 식습관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구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콜라겐을 이루는 페닐알라닌과 글루탐산 각각의 δ¹⁵N을 분석했다. 분석에 성공한 표본은 유콘 2점과 와이오밍 3점이었다.
생태계별 기준값을 적용한 계산에서 유콘 개체는 영양단계 4인 3차 소비자, 와이오밍 개체는 평균 3±0.3인 2차 소비자로 추정됐다. 쉽게 말해 유콘 개체가 먹이사슬에서 와이오밍 개체보다 한 단계 높은 자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계산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연어과·인코누 등 회유성 또는 반회유성 물고기의 이용 가능성과 가장 잘 부합하는 설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화석에서 물고기 뼈나 위 내용물, 배설물, 물고기 DNA가 나온 것은 아니다. 미라키노닉스가 얕은 물에서 물고기를 직접 잡았는지, 산란장에 몰린 물고기를 사냥했는지, 산란 뒤 죽은 사체를 주웠는지도 구별할 수 없다. 영양단계 4 역시 직접 관측값이 아니라 높은 벌크 δ¹⁵N을 근거로 수생 먹이망의 기준값을 적용해 얻은 모델 추정치다.
치타 같은 몸은 혈통보다 환경이 만든 모양
미라키노닉스의 긴 다리와 날씬한 몸은 현대 치타와 가까운 혈연의 증거라기보다 수렴진화로 해석됐다. 수렴진화는 먼 친척인 생물이 비슷한 환경과 생활 방식에 적응하면서 닮은 특징을 각각 따로 얻는 현상이다. 개활지에서 달리는 데 유리한 몸이 두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번 연구가 미라키노닉스의 속도를 측정하거나, 이 동물이 느렸다고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 프롱혼과의 속도 경쟁 가설도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다. 앞선 와이오밍 식단 연구는 먹이의 약 40%를 프롱혼으로 추정하면서 말·들소·큰뿔양도 함께 이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와이오밍에서는 육상 초식동물을, 유콘에서는 수생 자원을 이용했다는 두 결과는 서로 모순되기보다 같은 종의 지역별 유연성을 보여줄 수 있다.
유전정보에서도 단순한 멸종 서사는 경계해야 한다. 두 고피복도 개체의 이형접합도, 즉 부모에게서 받은 두 유전체가 서로 다른 비율은 유콘 0.0384%, 와이오밍 0.0298%로 낮았다. 하지만 긴 동형접합 구간은 거의 없어 멸종 직전의 급격한 근친교배나 병목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유효집단크기 역시 약 100만 년 동안 거의 10만에서 줄어 약 7만 년 전 1만 미만이 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는 세대시간 5년과 돌연변이율 5×10⁻⁹을 가정한 유전학적 지표이지 실제 생존 마릿수가 아니다.
세 개체가 연 북쪽의 창,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하다
유콘과 와이오밍의 고피복도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두 개체의 공통 모계조상이 약 4만3천 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했다.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95% HPD 범위는 3만1700~6만1100년 전이다. 대륙빙하가 두 집단을 갈라놓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정된 원인은 아니다. 낮은 유전적 다양성이나 기후변화가 멸종을 일으켰다는 인과관계도 이번 연구로 밝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북쪽 식단의 결론은 유콘 벌크 동위원소 세 개체와 아미노산 분석 두 개체에 기대고 있다. 두 장소에서 일관된 신호가 나왔다는 점은 중요하지만, 이를 북극 전역이나 미라키노닉스 전체의 식단으로 확대할 수는 없다. 와이오밍 이남을 포함한 더 많은 지역 표본을 분석해야 이 동물이 환경에 따라 먹이를 얼마나 바꿨는지 알 수 있다.
이번 발견이 바꾼 것은 멸종동물 한 종의 이름표만이 아니다. 치타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치타의 생태를 그대로 대입하고, 한 지역의 먹이 흔적으로 종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에도 질문을 던졌다. 화석의 형태와 고대 DNA, 동위원소가 함께 보여준 미라키노닉스는 하나의 고정된 생태형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다른 자원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포식자였다. 이제 남은 질문은 ‘치타였는가, 퓨마였는가’보다 ‘이 퓨마의 사촌이 넓은 대륙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았는가’에 가깝다.
자료: UC 산타크루즈, 알래스카대 페어뱅크스, 유콘정부 고생물학 프로그램, 디모인대, 국립문화유산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