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방코끼리물범 13만3598회 잠수, 최소 수심 500m까지 ‘숨은 바다 날씨’를 그리다

남방코끼리물범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깊은 바다로 잠수했다가 올라올 때마다, 등에 붙은 작은 장비가 2초 간격으로 바닷속을 읽었다. 이렇게 기록된 잠수·상승 수직 프로파일은 13만3598회에 이르렀다. 물범에 부착한 CTD 태그 25개가 이동한 거리는 합계 11만8000km 이상으로, 지구 적도 둘레 약 4만km를 거의 세 바퀴 도는 거리다. 그 긴 항해가 드러낸 것은 해수면에서 최소 수심 500m까지 이어지는 ‘숨은 바다 날씨’였다. 수심 500m는 높이 555m인 롯데월드타워의 약 90%를 바닷속으로 세운 깊이다.
UC샌디에이고 스크립스해양연구소와 프랑스 연구진은 폭 1~20km, 수명 수시간~수일인 아중규모 전선·운동의 신호가 이 깊이까지 연중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중규모 전선은 서로 다른 밀도의 물이 좁은 구간에서 맞닿아 급격한 변화를 만드는 구조다. 대기전선처럼 비교적 빠르게 생기고 사라져 ‘바다 날씨’에 비유할 수 있지만 실제 대기 현상은 아니다. 특히 강한 신호는 바람과 파도가 표층의 물을 뒤섞는 혼합층 내부보다 그 아래에서 더 자주 관측됐다.
위성이 놓치는 1~20km를 물범이 훑었다
연구 대상은 케르겔렌 제도에서 출발한 남방코끼리물범에 부착한 태그 25개의 자료다. 관측일 범위는 2014년 10월 20일부터 2020년 8월 1일까지 약 5년 9개월이지만, 여러 태그의 간헐적 기록을 합친 것이어서 6년 연속관측은 아니다. 실제 관측 범위도 남위 42~65도, 서경 4도~동경 117도에 걸친 남극해 인도양 구역의 물범 이동로다. 연구진이 약 2000×9000km로 기술한 넓은 영역이지만 남극해 전체를 무작위로 조사한 것은 아니다.
태그가 직접 잰 값은 전도도·수온·압력이다. 연구진은 여기서 염분과 밀도, 물이 수평으로 얼마나 강하게 밀도 차를 보이는지를 나타내는 수평 부력경사 b_x를 계산했다. 물범이 먹이를 찾으며 구불구불 움직이는 하강 구간은 제외하고, 속도와 방향이 비교적 일정한 상승 구간만 분석했다. 인접한 잠수 사이의 중앙값은 거리 781m, 시간 18분이었다. 잠수 깊이는 중앙값 301m, 최댓값 999m였다.
원자료 13만3598개를 경로를 따라 100m 간격으로 선형보간한 뒤 1km 이동평균을 적용했다. 전처리를 마친 최종 자료는 수평 1km·수직 1m 해상도의 11만8121개 프로파일이다. 13만3598은 물범 수나 모두 500m에 도달한 잠수 횟수가 아니라 원 잠수·프로파일 수이며, 깊어질수록 표본은 줄어든다. 보정 후 정확도는 수온 ±0.02℃, 염분 ±0.03g/kg으로 추정됐다.
핵심 반전은 혼합층 아래에 있었다
연구진은 혼합층을 수심 15m보다 밀도가 0.03kg/m³ 증가하는 깊이로 정했다. 그 경계의 급격한 변화가 결과를 흐리지 않도록 경계 위 5m와 아래 10m, 합계 15m 구간도 분석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b_x|가 0.25×10⁻⁷s⁻²보다 큰 표본의 비율은 혼합층 아래에서 60%, 혼합층 안에서 40%였다. 더 강한 기준인 0.5×10⁻⁷s⁻²를 적용하면 각각 35%와 20%였다. 같은 기준에서 강한 밀도 전선이 표면 가까이보다 그 아래에 더 빈번했다는 뜻이다.
계절성도 깊은 곳에서 뚜렷했다. 수심 170~500m의 부력경사는 남반구 봄인 9~11월에 가장 강하고 가을인 3~5월에 가장 약했다. 여름과 겨울은 대체로 그 사이였으며 두 계절 사이의 유의한 차이는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봄·초여름과 가을·겨울 자료는 서로 다른 연도와 태그에 많이 의존해, 같은 물범과 같은 연도를 계속 추적한 완전한 사계절 실험은 아니다. 또한 동부 구역만 사계절 자료를 갖췄다. 남부에는 봄, 북서부에는 가을·겨울, 남서부에는 겨울 자료가 없기 때문에 남극해 인도양 구역의 모든 장소에서 사계절을 직접 비교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2018년 11월 10~20일 동부의 약 550km 구간은 구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례에서 혼합층 깊이는 20~300m, 평균 약 100m였고 수온 편차는 최대 ±1.5℃, 염분 편차는 최대 ±0.3PSU였다. 폭 5~10km의 전선에서는 부력경사가 2×10⁻⁷s⁻² 이상으로 나타난 반면, 혼합층 내부의 전형적인 값은 0.5×10⁻⁷s⁻² 이하였다. 이 수치는 특정 기간과 구간에서 나온 사례값이지 전체 해역의 상한을 뜻하지 않는다.
표층 소용돌이가 깊은 전선을 압축했나
연구진은 깊은 부력경사의 계절 변화와 표층 에디 운동에너지(EKE)를 비교했다. EKE는 소용돌이치는 흐름이 가진 운동의 세기를 나타내는 지표다. 비교에 사용한 위성 기반 NeurOST 자료는 명목상 0.1도·일 단위 격자지만 실효 해상도는 약 100km 이상이다. 따라서 위성이 물범이 발견한 1~20km 전선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표층의 큰 규모 소용돌이 운동과 물범이 포착한 깊은 신호의 계절 변화가 함께 움직이는지를 살핀 것이다.
수심 170~500m의 계절 상관계수는 평균 r=0.86이었고, 동부 수심 300m의 필터 자료에서는 r=0.88이었다. 하지만 이 비교의 p값은 0.12로 통상적인 p<0.05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다. 네 계절 평균이라는 네 점을 비교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규모 소용돌이가 주변 물의 밀도 차를 압축해 더 좁고 강한 전선을 만드는 ‘전선생성’ 가설과 일치하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내부중력파, 즉 밀도가 층을 이룬 바닷속에서 위아래로 진동하는 파동을 전선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남는다. 연구진은 등밀도면의 수온·염분 조합인 ‘스파이스’의 수평경사를 마스크로 사용하고 가장 약한 30%의 b_x 표본을 제거했다. 임계값을 10~70%로 바꿔도 큰 결론은 유지됐지만, 내부파와 아중규모 운동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법은 아니다. 실제 신호 일부가 빠지거나 내부파·난류혼합 신호가 남았을 수 있다.
깊은 바다의 교환량은 아직 측정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해류·난류·수직 유속이나 열·탄소·영양염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 강한 깊은 부력경사는 표층과 심층 사이 교환이 예상보다 중요할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이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를 밝히려면 수직 유속과 플럭스, 즉 단위 면적을 통과하는 열이나 물질의 양을 직접 재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물범이 먹이·수온·해빙 또는 전선을 따라 이동해 특정 물덩어리를 더 많이 표집했을 가능성과 연속 잠수 자료의 자기상관도 추가 점검 대상이다.
한국도 같은 관측 발판을 운용한 경험이 있다. 극지연구소는 2021년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웨델물범에 CTD-SRDL을 부착해 국내 최초 해양포유류 CTD 관측을 수행했다. 동료평가 연구가 분석한 규모는 웨델물범 23마리와 수온·염분 프로파일 6057개였고, 조기 종료 장비 2대를 제외한 평균 관측 깊이는 219±66m, 최대 깊이는 997m였다. 이와 함께 극지데이터센터 메타데이터는 2021년 2월 웨델물범 24마리와 게잡이물범 3마리에 바이오로거를 부착했다고 기록했다. 논문의 23마리는 실제 CTD 프로파일을 전송한 웨델물범 장비를 분석한 집계지만, 두 자료의 개체별 대응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한국 자료는 위성으로 압축 전송된 일반 CTD-SRDL 자료인 반면, 이번 연구는 회수한 태그의 고해상도 연속자료를 썼다. 한국 관측이 이번 심층 아중규모 현상을 독립적으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논문은 2026년 9월 4일 동료평가와 게재 승인을 거쳐 공개됐지만 추가 교정 가능성이 있는 Article in Press 상태다. 이번 성과가 확실히 보여준 것은 남극해 인도양 구역의 물범 이동로에서 빠르게 변하는 작은 밀도 전선이 표면에만 머물지 않고 최소 수심 500m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 전선이 실제로 바다의 열과 물질 교환을 얼마나 바꾸는지는 이제 측정해야 할 질문으로 남았다.
자료: UC샌디에이고 스크립스해양연구소, CNRS·라로셸대 생물학연구센터, MEOP 컨소시엄, NASA 제트추진연구소, 극지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