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스트론튬 주파수 88년 만에 재측정…불확도 50배 개선

원자 하나가 내는 빛깔을 88년 만에 다시 재본 결과가 나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포토닉 격자 칩이라는 초소형 광학 부품을 활용해 스트론튬 원자의 핵심 주파수를 새로 측정하고, 오차 범위인 불확도를 기존보다 50배 이상 낮춘 값을 확립했다. 88년이라는 시간 동안 손대지 못했던 기준값을 다시 세웠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단순한 수치 갱신을 넘어 정밀 양자기술의 밑그림 자체를 다시 그린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스트론튬은 광격자 원자시계나 양자센서 같은 정밀 양자기술에 널리 쓰이는 원자다. 이런 기술에 원자를 활용하려면 먼저 빠르게 움직이는 원자를 레이저 빛으로 붙잡아 느리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원자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빛의 주파수(전이주파수)를 정확히 알아야 레이저를 정확히 맞출 수 있다. 흔들리는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라디오 채널을 찾듯, 그동안 연구자들은 기존 주파수 값을 그대로 쓰기보다 원자의 반응을 직접 관찰하며 레이저를 조금씩 조정해 왔다. 기준이 되는 값 자체가 부정확하면 이런 조정 과정마다 시행착오가 쌓이고, 장비를 새로 세팅할 때마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기존에 알려진 값은 1938년 태양빛의 스펙트럼과 스트론튬을 태울 때 나오는 아크광을 비교해 얻은 것으로,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최선이었지만 오늘날의 정밀 레이저 장비를 곧바로 맞추기에는 오차 범위가 너무 컸다. 연구팀은 스트론튬 원자를 느리게 만드는 데 쓰이는 461나노미터(nm) 파장의 파란빛 전이주파수를 새로 측정해 650.503815(5)테라헤르츠(THz)라는 절대값을 확립했다. 1년에 걸친 정밀측정 끝에 불확도를 약 5메가헤르츠(MHz)까지 낮춰, 기존 값보다 50배 이상 정밀해졌다. 거의 한 세기 가까이 쌓여온 오차를 걷어내고 오늘날의 측정 기술 수준에 맞는 새 좌표를 찍은 셈이다.
이번 측정에는 국제단위계(SI)와 연결된 KRISS의 국가 시간·주파수 표준이 기준으로 활용됐다. 측정 안정성을 끌어올린 핵심 장치는 KRISS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나노종합기술원(NNFC)과 함께 개발한 포토닉 격자 칩이다. 진공 장치 내부에 놓인 이 칩은 표면의 미세한 격자 구조로 빛을 정해진 방향으로 회절·반사시켜, 여러 개의 거울을 따로 정렬해야 했던 기존 방식보다 기계적 흔들림에 따른 오차를 줄여준다. 거울을 여러 개 세워 정렬하는 방식은 장치가 흔들리거나 온도가 바뀔 때마다 미세하게 어긋나기 쉬운데, 칩 하나로 이를 대체하면 그만큼 오차가 끼어들 여지도 줄어드는 구조다. 연구팀은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원리가 다른 두 가지 방법도 함께 적용했다. 레이저 주파수에 따라 달라지는 원자의 빛 반응을 분석하는 방법과, 레이저로 느려진 원자빔의 속도에서 거꾸로 전이주파수를 계산해내는 방법이다. 서로 다른 원리로 얻은 값이 일치한다는 것은 이번에 확립한 절대값이 특정 측정 방식의 우연한 오차가 아니라는 근거가 된다.
이재훈 KRISS 화학소재측정본부 소재물성측정그룹 원자양자센싱그룹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는 차세대 양자기술에 필요한 정확한 기준값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것"이라며 "원자시계와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포함한 양자기기의 정밀 제어와 소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향후 광주파수 합성 기술과 결합하면 주파수를 일일이 찾아가는 과정을 줄일 수 있어, 냉각원자 기반 양자기기의 소형화와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까지는 장비마다 원자의 반응을 보며 라디오 다이얼 맞추듯 주파수를 찾아야 했다면, 정확한 절대값이 확보된 만큼 앞으로는 이 과정 자체를 줄이거나 자동화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측정표준 분야 국제학술지 '메트롤로지아(Metrologia)'에 2026년 7월 게재됐다. 연구는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진흥연구소(KRIT)의 '초정밀 양자 계측 센서 특화연구실'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자료: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