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걷는 로봇이 우리에게 묻는 것

스위스 ETH 취리히 연구진이 상용 로봇 손 '우지(WUJI)'에 소형 컴퓨터와 센서만 얹어 손가락으로 걷고,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 눈길을 끈 건 '걷는 손' 자체가 아니었다. 애초에 걷기 위해 설계되지 않은 기계가 별도의 다리 없이 걷는 법을 스스로 익혔다는 사실, 즉 하나의 하드웨어가 손이자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전용 로봇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흐름
로봇공학은 오랫동안 '한 로봇, 한 기능'의 틀 안에서 발전해왔다. 물건을 집는 로봇 손(그리퍼)은 집는 일만, 두 발로 걷는 보행 로봇은 걷는 일만 하도록 설계됐다. 이런 접근은 성능은 높이지만 범용성은 떨어뜨린다. 최근 몇 년 로봇공학계의 화두는 이 틀을 깨는 것이다. 하나의 몸체로 여러 작업을 해내는 '범용 로봇'을 향한 시도가 늘었고, 그 동력 중 하나가 강화학습(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스스로 최적의 동작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학습 방식)이다. 사람이 일일이 보행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대신, 로봇이 수많은 훈련을 거쳐 스스로 '손가락으로 걷는 법'을 찾아내도록 한 이번 연구는 이런 흐름 위에 있다고 본다.
기존에도 다리형 보행 로봇이 학습으로 걷는 능력을 익힌 사례는 많았다. 이번 연구가 특별한 이유는 대상이 애초에 보행용으로 설계되지 않은 손이라는 점이다. 관절 구조와 무게 배분이 걷기에 최적화되지 않은 기계에서도 강화학습이 걸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로봇의 형태와 기능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고 나는 평가한다.
산업 현장에 던지는 질문
나는 이 연구가 당장 상용 보행 로봇을 대체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손가락 보행은 다리 보행에 비해 속도나 안정성에서 분명 불리하다. 그럼에도 이 실험이 의미 있는 이유는, 물류창고나 제조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로봇 손이 '집는 도구'를 넘어 좁은 틈을 이동하거나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는 보조 이동 수단으로 확장될 여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설비 구석에 낀 부품을 손 하나로 걸어 들어가 집어내는 장면이 더 이상 공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산업계가 짚어야 할 대목도 있다. 국내 로봇 개발은 여전히 하드웨어 완성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학습 기반 제어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와 인력은 상대적으로 얇다. 이런 종류의 성과가 값비싼 신형 하드웨어가 아니라 기존 상용 장비에 계산 자원과 학습 알고리즘을 더해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하드웨어 경쟁만큼이나 제어·학습 소프트웨어 역량 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러준다고 본다. 로봇 한 대를 더 잘 만드는 경쟁에서, 이미 있는 로봇을 더 똑똑하게 쓰는 경쟁으로 무게를 옮겨야 할 때라고 나는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