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벨 화학상에 카간·소아이…분자의 ‘한쪽 손잡이’를 증폭한 화학

거울에 비친 오른손과 왼손처럼 생김새는 닮았지만 포개지지 않는 분자 가운데 한쪽 형태만 골라 만드는 길을 연 연구가 2026년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졌다. 왕립스웨덴과학한림원은 앙리 B. 카간과 켄소 소아이를 올해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공식 수상 사유는 ‘비대칭 유기합성에서 비선형 효과와 자기촉매작용의 발견’이다. 두 사람은 분자의 아주 작은 비대칭이 화학반응을 거치며 예상보다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작동 원리를 각각 밝혀냈다. 상금은 1,200만 스웨덴크로나로 두 수상자가 절반씩 받는다.
분자에는 원자 구성과 연결 순서가 같아도 서로 거울상 관계를 이루는 형태가 있다. 이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한다. 이런 분자의 방향성을 ‘키랄성’이라고 부른다. 양손이 비슷해 보여도 오른손 장갑을 왼손에 그대로 낄 수 없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거울상 분자들은 일반적인 성질이 비슷하지만 생명체나 다른 키랄 분자와 만날 때 서로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카간 연구진은 1986년 미국화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JACS에 비대칭 합성의 ‘비선형 효과’를 보고했다. 이는 촉매가 한쪽 거울상 형태를 얼마나 많이 포함하는지와 최종 생성물이 한쪽 형태로 치우치는 정도가 단순한 비례 관계를 따르지 않는 현상이다. 완전히 순수하지 않은 촉매를 사용해도 예상보다 한쪽 이성질체가 크게 우세한 생성물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비선형 효과는 선택적 합성의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촉매와 반응물 분자들이 반응 도중 어떻게 모이고 결합하는지 추적하는 기작 분석 도구로도 쓰인다. 카간 연구진의 핵심 논문은 JACS 108권 2353~2357쪽에 실렸다.
소아이 연구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성물이 자기 자신을 만드는 촉매로 작용하는 자기촉매 반응을 입증했다. 소아이 반응에서는 생성된 키랄 5-피리미딜 알칸올이 같은 형태의 물질을 추가로 만드는 데 관여한다. 처음에는 거의 차이가 없던 두 거울상 형태 가운데 조금 앞선 쪽이 반응을 반복하면서 빠르게 우세해지는 구조다.
연구진은 1995년 한쪽 거울상 이성질체의 2% 초과분을 87%까지 증폭했다. 2003년에는 약 0.00005% ee라는 극미한 비대칭을 99.5% 초과 ee로 키웠으며, 반응 수율도 99%를 넘는 것으로 보고했다. ee는 두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쪽이 다른 쪽보다 얼마나 더 많은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0%에 가까우면 양쪽 양이 거의 같고, 100%에 가까울수록 사실상 한쪽 형태가 지배적이다.
이 결과는 F. C. 프랭크가 1953년 제안한 자기촉매 기반의 대칭 깨짐 모델을 실험적으로 뒷받침했다. 다만 소아이 반응이 실제 생명체에서 아미노산이나 당이 생성되는 경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연구의 의미는 생명체의 최초 경로를 확정한 데 있지 않고, 매우 작은 초기 편향이 화학반응을 통해 큰 비대칭으로 자랄 수 있음을 구체적인 실험으로 보여준 데 있다.
한쪽 거울상 분자를 선택적으로 만드는 기술은 의약품뿐 아니라 향료, 맛 성분, 농약, 신소재 합성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파스퇴르의 주석산 거울상 분리에서 출발해 2001년 비대칭 촉매합성, 2021년 비대칭 유기촉매 연구로 이어진 선택적 분자 합성의 역사 위에 놓였다.
자료: 왕립스웨덴과학한림원, 미국화학회, 일본화학회, Wiley-VCH, 일본학사원, 도쿄이과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