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결함을 없애지 않고 ‘조직했다’…전자 폴라론으로 1초에 1000번 움직인 은나이오베이트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12 06:43
약 200nm 박막서 1kHz 기준 최대 6.2% 변형·7170±230pm/V 유효 압전응답…강한 직류 바이어스와 주파수 의존성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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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St. John

단단한 결정 안에서 무거운 원자가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전자라는 작은 ‘메시지’가 옆자리로 전달되며 주변 원자 배열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연구진은 이 원리를 이용해 칼륨 8mol%를 넣은 약 200nm 두께의 은나이오베이트 박막에서 1초에 1000번 전기장을 되풀이하는 1kHz 조건에서도 큰 변형을 끌어냈다. 보고된 최대 1차 조화 변형은 약 6.2%, 직류 바이어스 아래 장유도 유효 압전계수 d*33,f는 7170±230pm/V였다. 다만 두 최고값은 서로 다른 교류장 조건에서 측정됐으며, 무바이어스 상태에서 나타나는 고유 압전상수를 뜻하지 않는다.

6.2%는 약 200nm인 박막 두께의 16분의 1가량이 변하는 비율이다. 두께만 놓고 단순 환산하면 약 12.4nm다. 절대 거리는 작지만 원자층으로 이뤄진 얇은 막이 반복적으로 감당한 변형 비율은 크다. 연구 결과는 2026년 10월 1일 논문 ‘Ultrahigh piezoelectricity by polaron-defect complexes’로 발표됐다. 공동 제1저자는 량수와 펑구양이며, 전체 저자는 30명이다.

빠르지만 작거나, 크지만 느렸던 변형

전기장을 받으면 물질의 모양이 바뀌는 압전·전기변형 재료는 전기 신호를 기계적 움직임으로 바꾸는 데 쓰인다. 그러나 기존 강유전체의 고유 쌍극자, 즉 결정 안에서 양전하와 음전하의 중심이 어긋나 생기는 작은 전기 방향성은 빠르게 반응하는 대신 움직임이 작았다. 반대로 산소공공처럼 원자가 비어 있는 이온 결함을 움직이면 큰 변형을 만들 수 있지만, 무거운 결함의 이동은 느렸다.

이번 연구가 택한 길은 결함 자체를 1kHz 속도로 멀리 운반하는 것이 아니다. 결함 주변에 갇힌 전자와 그 전자가 일으킨 국소 격자 왜곡을 묶은 ‘작은 전자 폴라론’을 이용했다. 폴라론은 전자 하나만 따로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라, 전자가 주변 결정 구조를 찌그러뜨리며 함께 존재하는 준입자다. 기존 결함형 거대변형이 무거운 사람이 방을 직접 옮기는 방식이라면, 이번 방식은 전자라는 메시지가 옆방으로 빠르게 건너가면서 방의 모양을 바꾸는 방식에 가깝다.

연구진은 Ag0.92K0.08NbO3, 논문 표기로 PD-AKN8인 박막을 Nb 도핑 SrTiO3(011) 기판 위에 화학용액증착법으로 만들었다. 제조 과정에서 은 일부가 환원·석출되면서 국소적인 은 결핍과 니오븀 과잉 영역이 생겼고, 이곳에 Nb 반자리 결함과 국소 전자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반자리 결함은 한 원소가 원래 다른 원소가 있어야 할 결정 자리를 차지한 결함이다.

결함 주변 전자가 이웃 자리로 ‘호핑’했다

연구진의 해석에 따르면 처음에는 폴라론–결함 복합체가 제각각 놓여 있다. 직류장이 이 복합체를 활성화하고 방향을 정렬하면, 그 위에 겹쳐 가한 교류장에 따라 작은 전자 폴라론이 이웃 Nb 자리 사이를 호핑한다. 호핑은 전자가 연속적인 길을 미끄러지듯 흐르는 대신 인접한 국소 자리로 뛰어넘는 이동이다. 이 과정에서 결함분극과 주변 격자의 변형이 주기적으로 달라지고, 원자 몇 줄 규모의 변화가 모여 박막 전체의 측정 가능한 움직임이 됐다는 설명이다.

원자분해능 분석에서는 결함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Nb 원자가가 낮아지는 신호와 격자변형이 함께 나타났다. 두 변화는 결함 중심에서 약 3개 단위격자 거리 안에서 약해졌다. 관찰된 결함 군집은 폭이 약 1~5nm였고 연결 길이는 10nm를 넘었다. 연구진은 이를 폴라론과 결함이 전기적·탄성적으로 결합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기작을 확인하기 위해 HAADF-STEM과 EELS, 4D-STEM, EDS 같은 원자분해능 현미경·분광법을 비롯해 SHG, 마이크로초점 싱크로트론 XRD, 전도·유전완화 측정, 밀도범함수이론(DFT)과 상장모사를 종합했다. DFT는 전자의 상태와 에너지를 계산하는 방법이며, 상장모사는 물질 내부의 분극과 구조 변화가 공간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계산하는 방식이다. 측정에서 얻은 폴라론 호핑 활성화에너지는 0.41±0.03eV였다.

완화 특성 주파수는 교류장만 가했을 때 약 200Hz, 직류장과 교류장을 중첩했을 때 약 260Hz였다. 이는 재료의 반응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간 척도가 수백 Hz 부근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실제 변형 응답은 1kHz에서도 크게 관찰됐다. 연구진이 구동 중 개별 폴라론의 도약 경로를 실시간 촬영한 것은 아니다. 여러 구조·전기·광학 측정과 계산 결과가 같은 기작을 가리킨다는 복합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7170pm/V를 읽을 때 필요한 조건

최고 장유도 유효 압전계수 7170±230pm/V는 1kHz, 375kV/cm의 직류 바이어스에서 독립 전극 6개를 측정한 평균이다. 375kV/cm는 37.5MV/m이며 약 200nm 두께에 단순 환산하면 약 7.5V에 해당한다. 그러나 접촉과 전극의 전압강하까지 포함한 실제 소자 전압과 완전히 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7170pm/V라는 계수만 보고 ‘1V를 걸면 소자가 7.17nm 움직인다’고 해석해서도 안 된다. 최고 성능에는 강한 직류 바이어스와 정해진 박막 전기장 조건이 필요했다.

최대 6.2%의 1차 조화 변형은 1kHz에서 100kV/cm의 교류장과 직류 바이어스를 중첩해 얻었다. 100kV/cm는 박막 두께에 단순 환산하면 약 2V다. 이 값과 7170pm/V는 하나의 동일한 측정점을 서로 다른 단위로 표시한 수치가 아니다.

응답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감소했다. 1kHz에서 최고 7170pm/V였지만 5kHz에서는 약 2080pm/V, 1초에 1만 번 구동하는 10kHz에서는 약 1090pm/V였다. 10kHz 값은 1kHz 최고치보다 약 85% 낮다. 따라서 기록적인 최고 응답과 넓은 주파수 범위에서 같은 응답을 유지하는 성능은 구분해야 한다.

대조실험도 결함 설계의 역할을 뒷받침했다. 결함이 적은 AgNbO3 박막의 응답은 약 20pm/V였고, PD-AKN8의 최고값은 이보다 약 350배 컸다. 칼륨 농도를 8mol%까지 높이면 응답이 증가했지만 12mol%에서는 다시 감소했다. Nb 반자리 결함과 국소 전자를 억제하도록 Mn을 첨가했을 때도 응답이 줄었다. 결함을 무조건 늘리는 것이 아니라 특정 결함과 전자의 결합을 조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레이저 주사 진동계로 전극 영역의 변위를 측정하고 기판 휨을 보정했다. 전극 안팎의 공간 분포도 비교해 국부 절연파괴나 단순한 기판 굽힘이 주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유전하 수송과 줄열, 전기화학 작용, 전통적인 강유전 스위칭 역시 주원인에서 배제했다고 보고했다. 다만 이는 해당 시료에 대한 연구진의 통제실험 결과이며 독립 연구진의 검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4인치 웨이퍼 뒤에 남은 소자화의 문턱

연구진은 같은 설계원리를 중심대칭·비페로브스카이트인 Nb 도핑 TiO2-x 박막에도 적용해 1kHz에서 1000pm/V가 넘는 유효 응답을 얻었다고 보고했다. 특정 은나이오베이트 조성에만 갇히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 내부 확장실험이지만, 별도 연구진의 독립 재현은 아니다.

4인치 실리콘 웨이퍼와 mm급 전극을 이용한 공정도 시연했다. 그러나 웨이퍼 전면에서 7170pm/V나 6.2%를 유지했다는 결과는 아니다. 대형 전극에서는 통계적 평균화와 기계적 구속 때문에 응답이 줄었다. 최고치는 약 200nm 박막과 특정 기판·전극 구조에서 나온 만큼 벌크 세라믹이나 완성된 초음파 변환기·액추에이터의 성능으로 곧바로 옮겨 말할 수 없다.

반복 구동 시험에서는 10kHz에서 4000만 회를 넘겼다. 횟수만 보면 크지만 시간으로는 약 4000초, 약 67분이다. 반복 구동 가능성을 확인한 시험이지 수년간의 제품 수명을 입증한 결과는 아니다. 장기 직류 바이어스와 온도·습도, 열충격, 패키징, 은 이동, 수십억 회 이상의 수명뿐 아니라 출력 힘과 에너지밀도, 유전손실, 전체 효율도 더 평가해야 한다. 약 200kV/cm 이상의 직류장에서 응답이 급격히 커지고 최고값에는 375kV/cm가 필요하다는 점도 구동회로 부담과 누설전류, 절연 파괴 여유를 따질 이유다.

이번 연구의 재료설계상 의미는 결함을 제거해야 할 흠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은 손실과 조성 요동으로 생긴 결함을 전자의 이동과 국소 변형을 조직하는 구조로 활용했다. 동시에 이런 조성 요동은 대량생산에서 편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웨이퍼마다 같은 결함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 제조 배치와 연구실이 달라져도 성능이 재현되는지는 남은 질문이다. 현재 확인된 것은 강한 직류 바이어스 아래 특정 박막에서 나타난 장유도 유효 응답이다. 그것을 무바이어스 고유 압전상수나 상용 소자 성능으로 확대하지 않을 때, 이번 결과는 ‘빠른 전자’와 ‘큰 결함 변형’을 연결한 새로운 설계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자료: 칭화대학교·시안교통대학교·베이징과학기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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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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