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수정란 하나에 심은 ‘DNA 타자기’, 13.5일 뒤 128만 세포의 가계도를 복원하다

수정란 하나가 둘로, 넷으로 갈라져 뇌와 근육, 혈액을 비롯한 수많은 세포를 만든다. 그렇다면 성장 중인 배아의 마지막 순간만 보고도 각 세포가 어느 조상에게서 갈라져 나왔는지 알아낼 수 있을까. 연구진은 13.5일 동안 현미경으로 모든 분열을 촬영하는 대신, 세포가 합성 DNA에 스스로 남긴 기록을 마지막 날 한꺼번에 읽었다. 그 결과 한 생쥐 배아에서 128만1141개 세포를 말단으로 하는 거대한 계통수, 즉 수정란을 뿌리로 삼은 세포 가계도를 재구성했다.
2026년 10월 8일 《Science》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발생 중인 세포 안에 ‘DNA 타자기’를 설치하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최종 공개 계통수는 생쥐 배아 발생 13.5일째인 E13.5까지의 기록을 담았다. 생쥐의 통상 임신 기간이 19∼21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3분의 2 지점까지 이어진 계보다. 다만 128만여 개 세포는 그 시기 배아 전체의 약 10%로 추정되는 표본이다. 배아의 모든 세포나 모든 분열을 빠짐없이 기록한 완전한 족보는 아니다.
세포가 물려주는 66칸짜리 기록장
연구진은 야생형 생쥐 수정란의 전핵에 프라임 편집기 PEmax와 편집 기호를 지정하는 epegRNA, 합성 기록장치 TAPE 등을 주입했다. 프라임 편집기는 DNA를 원하는 형태로 고쳐 쓰는 도구이며, TAPE는 그 결과가 차례로 쌓이는 합성 DNA 기록장이다. 이 장치들은 piggyBac 전이 시스템을 통해 유전체에 통합됐다. ‘수정란 하나에 심었다’는 표현은 최종 대형 계통수가 한 배아에서 나왔다는 뜻이지, 기록장치 한 개만 넣었다는 뜻은 아니다.
최종 분석 배아에는 각각 여섯 칸으로 이뤄진 TAPE가 11개 있었다. 모두 합하면 기록 위치는 66개다. 한 칸이 편집되면 다음 칸이 활성화돼 5′에서 3′ 방향으로 기록이 쌓였고, 최종 시각화에서는 13종의 기호를 구분했다. 종이 기록장에 앞에서부터 짧은 문자를 써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이 기록장이 세포분열 때 딸세포 양쪽으로 복사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두 세포가 같은 앞부분의 기록을 길게 공유하고 이후 서로 다른 기호를 갖는다면, 두 세포는 비교적 가까운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볼 수 있다. 공통 기록이 짧을수록 더 오래전에 갈라졌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각 세포가 물려받은 기록과 새로 얻은 기록을 비교하면, 마지막 시점에 채취한 세포만으로도 과거의 친족 관계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타자기가 세포분열마다 정확히 한 글자씩 찍힌 것은 아니다. 편집은 첫 난할, 즉 수정란이 처음 둘로 갈라지는 무렵 집중됐고 이후 조용한 구간을 거쳐 E6 전후 다시 활발해졌다. 기록 속도도 발생 시기와 세포 상태에 따라 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작동하는 시계라기보다, 첫날 여러 글자를 몰아 쓰고 쉬었다가 발생 중반에 다시 기록한 장치에 가깝다.
65만 세포로 뼈대를 세우고 128만 세포를 배치하다
연구진이 E13.5에 직접 측정한 것은 세포핵의 DNA 테이프 기록과 전사체였다. 전사체는 세포 안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RNA의 집합으로, 세포가 당시 어떤 상태와 기능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단서다. 반면 계통수의 내부 조상세포와 분기 시점은 직접 관찰한 값이 아니다. 마지막 날의 기록과 전사체, 외부 발생 지도를 결합해 계산하거나 추정한 결과다.
모든 세포에서 66개 기록 위치가 똑같이 선명하게 읽힌 것도 아니었다. 연구진은 먼저 세포당 판독된 TAPE가 7개 이상인 65만5701개 세포로 ‘골격 계통수’, 즉 기록이 충분한 세포들로 만든 가계도의 뼈대를 세웠다. 이어 품질검사를 통과한 나머지 세포를 DNA 기록의 거리에 따라 이 골격에 배치해 128만1141개 세포로 확장했다. 추가로 배치된 세포는 대체로 가까운 계통을 찾을 수 있지만, 어느 깊이의 가지에 놓이는지까지 골격 세포와 같은 수준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최종 말단 세포에는 138개 세포 유형, 25개 주요 발생 궤적, 6개 배엽 범주가 부여됐다. 배엽은 발생 초기에 만들어져 여러 조직과 기관으로 이어지는 큰 계열을 뜻한다. 연구진은 계보 안에서 어떤 세포 유형들이 함께 나타나는지 분석해 알려진 배엽·기관 관계와 세포 운명이 갈라지는 순서를 상당 부분 재현했다. 단일세포 전사체가 각 세포의 ‘현재 직업’을 보여줬다면, DNA 기록은 그 세포들이 어느 집안에서 갈라져 왔는지를 덧붙인 셈이다.
전체 계통수에는 말단 세포 사이를 잇는 내부 노드, 즉 계산으로 복원한 조상 지점이 110만9894개 있다. 이 가운데 외부 발생 전사체 지도의 시간 범위에서 분석할 수 있는 내부 노드는 105만4879개였으며, 92만6852개인 88%에 조상 상태가 부여됐다. 그러나 이는 과거 조상세포를 실제로 채취해 측정한 결과가 아니라 모델 기반 보간이다. 개별 조상 라벨에는 잡음이 있을 수 있고, 추정된 분기 시점 역시 정확한 발생 시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처음 갈라진 두 세포, 인원은 달라도 구성은 닮았다
첫 난할 직후 서로 다른 편집 표지가 생기면서 연구진은 최초 두 할구, 즉 수정란이 처음 둘로 나뉘어 생긴 세포의 후손을 구분할 수 있었다. 최종 골격 계통수 65만5701개 세포를 기준으로 한쪽 후손은 41만925개, 다른 쪽은 24만4776개였다. 두 대가족의 인원수에는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두 계통이 만든 세포 유형의 구성은 매우 비슷했다. 이는 첫 두 할구 가운데 한쪽은 뇌, 다른 쪽은 심장처럼 기관별 운명을 처음부터 나눠 맡았다는 결과가 아니다. 자녀 수가 서로 다른 두 집안에서도 직업 분포는 비슷할 수 있듯, 후손의 규모가 다르다고 해서 발생 초기에 세포 종류가 한쪽으로 뚜렷하게 배정됐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발생이 진행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원장배형성 무렵부터 일부 창시세포의 후손이 불균등하게 큰 몫을 차지하는 ‘클론 지배’가 나타났다. 원장배형성은 초기 배아에서 몸의 기본 층과 방향이 잡히는 과정이며, 클론은 하나의 조상세포에서 이어진 후손 집단을 말한다. 계통상 가까운 세포들이 무작위로 기대할 때보다 같은 세포 유형을 공유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세포의 현재 정체성을 계보와 함께 읽어야 발생 과정에서 특정 후손 집단이 언제 커지고 운명이 좁혀졌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발생의 시간축을 더했지만 아직은 한 배아의 지도
이번 접근은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이 보여주던 한 시점의 상태에 실제 DNA 계보와 추정 발생 시점을 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같은 종류로 보이는 세포들이 같은 조상에서 왔는지,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비슷한 상태에 도달했는지를 구분할 단서를 제공한다. 앞으로 발생 이상이나 암에서 특정 복제군이 언제 갈라지고 커졌는지를 연구하는 기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결과는 표준화된 대량 실험법이라기보다 개념증명에 가깝다. 연구진은 수정란 100개에 장치를 주입해 78개를 이식하고 E13.5 배아 10개를 회수했지만, 본격적인 분석은 기록 활성이 가장 강한 배아 3번 한 개에 집중했다. 첫 두 할구를 비교한 분석은 한 배아 안의 반복 비교일 뿐, 서로 다른 배아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독립 재현을 대신하지 못한다.
장치의 삽입 위치와 사본 수를 통제하지 못했고, 일부 세포만 서로 다른 구성을 갖는 모자이크 현상도 있었다. 기록 회수에는 누락이 있었으며, 유한한 TAPE가 발생이 이어지는 동안 소진될 수도 있다. 지속적인 프라임 편집과 여러 무작위 통합이 발생에 미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연구진은 전체 세포 유형 구성이 정상 발생 지도와 유사하다고 평가했지만, 배아 한 개의 분석만으로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계통수에서 이웃한 두 세포도 실제 마지막 분열에서 태어난 친자매가 아니라, 조사된 약 10% 표본 안에서 확인된 가장 가까운 친척일 수 있다. 논문 발표 직후인 만큼 다른 연구실이 같은 조건에서 수정란부터 E13.5까지 100만 세포 규모의 계통수를 독립적으로 재현했다는 보고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가 제시한 것은 완성된 생명의 족보가 아니라, 마지막 날 남은 DNA 기록으로 발생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다는 대규모 지도와 그 방법의 가능성이다.
자료: 워싱턴대 의대·Seattle Hub for Synthetic Biology·앨런연구소·다트머스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