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개 단위격자까지 얇아져도 ‘죽지’ 않았다…1.6㎚ 비스무트페라이트의 변신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를 4만~6만 조각으로 나눈 두께에서도 전기적 방향과 자기적 질서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제 공동연구진은 비스무트페라이트(BiFeO₃·BFO)를 1.6㎚까지 얇게 만든 박막에서 극성 질서와 반강자성 질서를 함께 유지하고, 대칭 분석과 계산에 부합하는 교대자성 신호를 관측했다. 1.6㎚는 원자 네 장이 아니라 원자들이 배열된 페로브스카이트 단위격자 네 칸에 해당한다.
이번 결과는 기존 성질이 약해진 채 간신히 남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두꺼운 BFO에서 스핀이 나선처럼 회전하던 구조가 사라지고, 원자 배열과 자기질서가 새로운 형태로 바뀌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10월 28일 《Nature Materials》에 온라인 게재됐다.
얇아지면 분극을 무너뜨리는 내부 전기장이 생긴다
BFO는 전기분극과 자기질서를 함께 지닌 다강체다. 전기분극은 물질 내부의 양전하와 음전하 중심이 어긋나 한 방향성을 갖는 상태다. 강유전 물질에서는 이 방향을 외부 전기장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반강자성은 이웃한 스핀이 반대 방향으로 배열돼 전체 자화가 거의 상쇄되는 자기질서다.
하지만 박막이 원자 수준으로 얇아지면 분극이 만든 표면전하가 자신을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탈분극장을 형성한다. 두께가 줄수록 표면과 계면의 영향도 커져 벌크 물질에서 안정적이던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4단위격자에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BFO 층이 표면이나 계면의 영향을 받는다.
연구진은 (110) 방향 DyScO₃ 기판에 20㎚ 두께의 SrRuO₃ 하부전극을 만들고, 그 위에 BFO를 반응성 산화물 분자선 에피택시로 성장시켰다. SrRuO₃의 자유전자는 분극전하가 만드는 탈분극장을 가리는 방패 역할을 했다. DyScO₃와의 격자 불일치는 BFO를 압축해 박막 면에 수직인 극성 변위를 안정화했다. 계면에서 산소 팔면체가 연결되는 방식과 진공에 닿은 표면의 대칭 깨짐도 새 구조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해석됐다.
성질을 버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으로 바뀌었다
원자분해능 HAADF-STEM과 다중절편 전자 프티코그래피 관찰에서는 첫 번째 BFO 단위격자부터 양이온의 극성 변위가 나타났다. 인접한 SrRuO₃에도 극성 변위가 유도됐다. 적어도 이 이종접합에서는 분극 구조가 사라지는 강유전 ‘죽은 층’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압전응답힘현미경 측정에서는 1.6㎚ 시료에 이력현상과 두 개의 안정된 극성 상태가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이는 극성 질서를 전환할 가능성이 유지됐다는 근거다. 안정적인 비휘발성 전환이나 완성된 메모리 동작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나노미터 박막의 측정은 정전기와 탐침의 기계적 작용, 표면전하, 이온 이동 등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구조 자체도 달라졌다. 1.6㎚ BFO는 두꺼운 BFO의 능면정계 R3c 구조 대신 면외 극성 성분이 커진 단사정계 Cm 구조를 보였다. 자기질서도 함께 변했다. 10㎚ 이상에서는 BFO 특유의 지그재그형 Type-I 스핀 사이클로이드가 관찰됐다. 스핀 사이클로이드는 스핀 방향이 공간을 따라 나선처럼 돌아가는 배열이다. 5㎚에서는 주기적 흔적의 전파 길이가 짧아졌고, 1.6㎚에서는 사이클로이드 특유의 신호가 사라졌다.
밀도범함수이론(DFT·전자구조를 계산하는 양자역학적 방법)은 Cm 구조에서 G형 반강자성 상태가 가장 안정하다고 예측했다. 이는 가장 가까운 이웃 스핀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놓이는 배열이다. 실험과 계산을 종합하면 1.6㎚ 시료는 사이클로이드가 억제된 강한 이방성의 공선형·기울어진 반강자성 상태로 해석된다. 자기질서는 약 500K, 섭씨 약 227도에서 전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기질서의 전이온도일 뿐 완성 소자가 그 온도에서 작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밖은 조용하지만 전자의 운동 방향에는 스핀 표지가 남는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핵심은 대칭·계산과 부합하는 교대자성 신호다. 교대자성체는 반강자성체처럼 전체 자화가 거의 상쇄되지만, 결정 대칭 때문에 전자의 운동량에 따라 스핀 밴드의 분열 방향이 번갈아 바뀔 수 있는 물질이다. 겉으로 큰 자석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전자의 진행 방향에는 스핀을 구별하는 표지가 남는 셈이다.
Cm 구조의 스핀군 대칭 분석은 B-2급 d파 교대자성을 허용했다. 스핀궤도결합을 끈 비상대론적 DFT에서도 운동량에 따라 부호가 바뀌는 d파형 스핀분열이 계산됐다. 계산상 최대 분열은 약 0.3eV로, 300K의 열에너지 약 0.026eV보다 약 12배 크다. 그러나 0.3eV는 실험으로 두 밴드 사이의 간격을 직접 측정한 값이 아니라 계산상 최대값이다.
실험적 지원 증거는 두 방향에서 나왔다. XMCD-PEEM에서는 시료의 두께와 에너지, 도메인에 따라 달라지는 자기원편광이색성 대비가 나타났다. 300K에서 실시한 스핀분해 ARPES에서는 운동량이 달라질 때 스핀편극 방향이 반전됐다. ARPES는 빛을 쏘아 나온 전자를 분석해 물질 안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살피는 방법이다.
두 결과는 대칭 분석과 DFT가 가리킨 방향과 맞았지만, 서로 갈라진 두 스핀 밴드 가지를 직접 분리해 영상화하지는 못했다. XMCD 역시 시간반전대칭 깨짐에 민감하지만 교대자성만을 유일하게 가려내는 검사는 아니다. 약한 스핀 기울어짐이나 계면 자성, 결함에 의한 자화도 대안 설명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계산과 모형으로 이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모델 의존성은 남아 있다. 따라서 이번 결과의 정확한 표현은 교대자성의 최종 확정이 아니라 여러 측정과 계산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 강한 지원 증거다.
원자 두께의 질서 설계, 소자까지는 검증할 것이 많다
두께가 약 3㎚ 아래로 내려가면서 구조와 극성, 자기질서는 연속적으로 달라졌다. 3.5㎚ 부근에서는 극성 질서와 Néel 질서가 함께 꼬인 소용돌이형 위상조직도 관찰됐다. Néel 질서는 반강자성 스핀 배열의 방향을 뜻한다. 연구진은 이 조직을 상전이를 지나는 동안 결함이 얼어붙는 Kibble–Zurek형 현상과 정성적으로 일치한다고 해석했다. 냉각률에 따른 보편적 스케일링까지 측정해 해당 법칙을 검증한 것은 아니다.
이번 성과의 차별점은 1.6㎚ BFO에서 강유전성을 처음 발견했다는 데 있지 않다. 앞선 연구에서도 1.6~2㎚ BFO의 분극 또는 잔류 압전반응이 보고됐다. 이번 연구는 극성 질서와 자기질서, 새 자기상, 교대자성에 부합하는 신호를 하나의 초박막 구조에서 결합해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소자까지 이어지는 핵심 질문은 남았다. 연구진이 전압 구동을 시험했지만 현재 이종접합은 빠르게 탈분극했다. 분극을 뒤집어 교대자성 밴드분열이나 위상조직을 가역적으로 반전하는 동작은 입증되지 않았다. 보존시간과 반복수명, 쓰기전압, 소비에너지, 오류율, 동작속도, 웨이퍼 균일도도 보고되지 않았다.
결과는 DyScO₃ 기판과 SrRuO₃ 전극, BFO가 결합한 특정 경계조건에서 나왔다. 다른 기판·전극이나 실리콘 공정, 다결정·대면적 박막에서도 같은 상태가 유지된다고 일반화할 근거는 아직 없다. 이번 연구는 원자 수준으로 얇은 다강체에서 전기분극과 자기질서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질서를 원하는 순간에 쓰고, 오래 보존하며,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실제 동작으로 바꾸는 일이다.
자료: 브라운대학교·코넬대학교·라이스대학교·요하네스구텐베르크 마인츠대학교·막스플랑크연구소·오크리지국립연구소·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MAX IV 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