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어디까지 왔나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7.31 10:04 · 수정 2026.08.24 12:28
말을 잃은 환자의 문장을 되찾은 256개 전극, 뇌수술·혈관·뇌파로 갈라진 기술 경쟁과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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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UC 데이비스)

팔다리를 움직이기 어렵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머릿속으로 문장을 떠올린다. 잠시 뒤 컴퓨터 화면에 그가 말하고 싶었던 단어가 나타난다. 공상과학 영화의 장면이 아니다. 2026년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집에서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즉 ALS로 심한 발음장애와 팔다리 약화를 겪는 케이시 해럴이 매일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는 뇌와 기계 사이에 통역사를 두는 기술이다. 사람의 뇌는 전기신호로 대화하는 약 850억 개 뉴런의 통신망이다. BCI는 이 통신망에서 필요한 신호를 감지하고,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디지털 명령으로 번역한다. 최근 성과의 핵심은 단순히 화면의 점을 움직이는 데서 벗어나, 사용자가 말하려던 문장을 일상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복원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256개 전극이 되찾은 하루의 대화

UC 데이비스 연구진은 2023년 당시 47세였던 해럴의 좌측 전중앙이랑에 4개의 미세전극배열을 이식했다. 전중앙이랑은 말할 때 혀와 입술, 성대 같은 발음기관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운동피질 부위다. 미세전극배열에는 모두 256개의 전극이 들어갔다. 전극은 신경세포가 내는 전기신호를 감지하는 아주 작은 금속 탐침이다.

사람이 실제로 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말을 하려는 순간 운동피질에는 발음기관을 움직이라는 신호 패턴이 만들어진다. BCI는 이 패턴을 전극으로 읽는다. 이어 음성인식 AI와 비슷한 원리의 알고리즘이 신경신호를 사용자가 의도한 단어와 문장으로 디코딩한다. 디코딩은 암호를 해독하듯 뇌신호의 의미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억양만 듣고 뜻을 짐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숙련된 통역사가 문장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옮기는 데 가까워진 것이다.

2026년 6월 15일 발표된 결과에서 해럴은 약 2년 동안 3800시간 이상 이 장치를 사용했다. 연구자가 옆에서 조작하지 않아도 집에서 매일 독립적으로 썼다. 12만5000개 어휘를 대상으로 한 제어 테스트의 단어 정확도는 99%, 문장 단위 정확도는 92%였다. 통신 속도는 분당 56단어로 일반인의 대화 속도에 근접했다. 그가 만든 문장은 누적 18만3000개 이상, 단어로는 약 200만 개에 이르렀다. 장치를 이용한 풀타임 근무도 가능해졌다.

연구를 이끈 데이비드 브랜드먼은 BCI가 그동안 개념 증명, 즉 원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에 머물렀지만 이제 실용화의 문턱을 넘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높은 정확도만큼 중요한 대목은 장기간의 독립 사용이다. 실험실에서 잠시 성공하는 기술과 환자가 집에서 매일 의지할 수 있는 기술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뇌에 심을까, 혈관으로 갈까, 두피에서 들을까

BCI 개발 경쟁은 뇌신호를 어디에서 읽느냐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뉜다. 해럴이 사용한 미세전극배열과 뉴럴링크의 N1은 침습형이다. 두개골을 열고 전극을 뇌 표면이나 조직 안에 직접 넣는다. 개별 신경세포 가까이에서 신호를 받을 수 있어 문장 단위 발화나 정밀한 커서 제어가 가능하지만 뇌수술의 부담이 따른다.

뉴럴링크의 N1에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실 형태의 유연한 전선 64개와 총 1024개의 전극이 배치된다. 전극은 개별 신경세포의 신호를 초당 2만 샘플 속도로 기록한다. 칩은 이 가운데 필요한 스파이크, 즉 뉴런이 순간적으로 내는 신호만 골라 압축하고 초당 약 1메가비트 속도로 외부 기기에 무선 전송한다. R1 수술 로봇은 실 하나를 뇌에 넣는 데 1.5초가 걸린다.

첫 이식 환자인 놀런드 아르보는 2024년 1월 수술을 받은 뒤 2026년 상반기까지 28개월 동안 장치를 사용했다. 하루 약 10시간 컴퓨터를 제어하며 화학·생물·미적분을 공부하고 체스를 뒀다. 뉴럴링크는 그의 커서 제어 속도가 초당 9비트를 넘어 종전 뇌-인터페이스 기록의 두 배라고 밝혔다. 2025년 9월 기준 전 세계 중증 마비 환자 12명이 이식을 받았고, 영국에서도 2025년 10월부터 12월까지 7명이 임상시험 수술을 받았다.

싱크론은 뇌를 직접 절개하지 않는 최소침습형을 택했다. 스텐트로드는 목의 내경정맥을 따라 들어가 운동피질 옆 혈관에 자리 잡는 스텐트(혈관을 넓게 유지하는 그물 모양 금속관)로, 체온에 반응해 스스로 펴지는 니티놀(형상기억합금) 재질이다. 표면의 백금-이리듐 박막 전극이 뇌신호를 읽는다. 환자 6명을 12개월 추적한 연구에서는 장치가 모두 목표 위치에 정확히 배치됐고, 뇌·혈관 관련 중대 이상반응은 없었다. 안정성은 2년 이상 유지됐다. 싱크론은 2026년 FDA 정식 판매승인을 받기 전 마지막 관문인 피벌럴(pivotal)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2억 달러, 약 28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비침습형은 두피 위에서 뇌파를 측정한다. 수술이 필요 없어 안전하지만 신호가 두개골을 통과하며 약해지고 잡음도 섞인다. 침습형이 뉴런 하나하나의 속삭임을 가까이에서 듣는다면, 비침습형은 수백만 뉴런이 한꺼번에 내는 함성을 바깥에서 듣는 셈이다. 안전성과 신호의 정밀도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택할지가 BCI의 용도와 시장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은 비침습형과 ‘느끼는 로봇’에 건다

한국 정부는 2026년 3월 18일 발표한 ‘뇌 미래산업 국가 R&D 전략’에서 BCI를 향후 10~20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K-문샷 12대 임무 중 하나로 지정했다. 목표는 생각만으로 컴퓨터와 기계를 작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해 신체 제약을 극복하고, 뇌질환 치료와 감각 복원, 인공신체, 웨어러블 로봇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2030년대 초반까지 상용화 가능한 기술 수준에 도달한다는 로드맵도 제시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침습형보다 수술 위험이 없는 비침습적 뇌파 감지 기술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이 뇌 가까이에서 고품질 신호를 얻는 이식형 기술을 앞세우는 동안, 한국은 안전성과 범용성을 바탕으로 일반 소비자 시장을 겨냥한다. 고려대학교 조일주 교수가 BCI 임무 프로그램디렉터를 맡고 한국뇌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KAIST, UNIST와 민간기업 등이 참여한다.

또 다른 축은 KAIST와 엔젤로보틱스가 2026년 4월부터 2032년 12월까지 추진하는 Brain-to-Robot 프로젝트다. 목표는 뇌신호로 외골격 로봇을 실시간 제어하는 동시에 로봇이 감지한 지면 반력과 관절 토크 같은 촉각·힘 정보를 다시 뇌로 전달하는 양방향 플랫폼이다. 지금의 BCI가 뇌에서 기계로 명령을 보내는 길을 여는 기술이라면, 이 프로젝트는 기계에서 뇌로 감각이 돌아오는 길까지 만들려는 시도다.

실험실 밖으로 나온 기술, 남은 문턱

BCI는 이미 말을 잃은 사람이 문장을 만들고, 사지마비 환자가 컴퓨터로 공부하며, 뇌신호로 로봇을 움직이는 단계에 들어섰다. 관련 시장은 2030년 177억 달러, 약 2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높은 신호 품질을 위해 뇌수술의 부담을 감수할지, 정밀도는 낮더라도 안전한 방식을 널리 보급할지는 아직 하나의 답으로 모이지 않았다.

정식 상업 승인도 남아 있다. 뉴럴링크와 싱크론의 FDA 정식 상업 승인은 2028~2030년으로 예상된다. 해럴의 3800시간 사용은 BCI가 일상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서 장기간 안전성과 성능을 입증해야 한다. 생각을 읽는 기술이라는 거대한 표현 뒤에서 지금 실제로 벌어지는 변화는 더 구체적이다.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 없던 사람이 자신의 의도를 다시 문장과 행동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임상일 때 중국은 시판…허가 경쟁의 반전

뉴럴링크와 싱크론이 미국 FDA의 정식 승인을 기다리는 사이, 이식형 BCI의 첫 시판 허가는 태평양 반대편에서 나왔다. 중국의 의약품·의료기기 규제당국인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2026년 3월 자국 기업 보루이캉이 개발한 이식형 BCI 'NEO'를 척수손상 사지마비 환자의 손 기능을 보조하는 의료기기로 승인했다. 이식형 BCI가 정식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은 세계 처음이다. 뇌에 심은 센서가 읽은 신호를 AI가 해석해 손에 착용한 보조기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18개월 넘는 임상에서 참가자 32명 전원이 물건 집기 같은 일상 동작 개선을 보였다. 7월 13일에는 상하이 화산병원에서 첫 상용 이식 수술까지 이뤄졌다.

중국은 올해 시작된 15차 5개년 계획(2026~2030)에서 BCI를 미래산업으로 지정해 승인과 투자를 더 늘릴 태세다. 한국 정부가 2026년 7월 하반기 업무계획에서 제시한 목표는 2030년 사지마비 환자용 BCI 제품 실증이다. 중국이 판매를 시작한 단계에 한국은 4년 뒤 실증으로 도달하는 일정인 셈이다.

'뇌 데이터'에 둘러지는 울타리…194개국의 첫 합의

속도전의 반대편에서는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네스코 194개 회원국은 2025년 11월 신경기술 윤리 권고를 채택했다. 이 분야 첫 세계 표준으로, 뇌 신호 데이터를 생각과 감정까지 드러낼 수 있는 민감정보로 규정하고 명시적 동의와 투명성을 요구했다. 직장에서 생산성 감시에 쓰는 것을 경계하고, 뇌가 발달 중인 아동·청소년에게는 치료 목적이 아닌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9년 첫 국제 권고를 채택한 데 이어 유엔 체계 차원의 기준이 세워진 것이다. 입법도 시작됐다. 칠레는 2021년 세계 처음으로 헌법에 뇌 활동 보호를 명시했고, 미국 콜로라도주와 캘리포니아주는 2024년 신경 데이터를 민감정보로 보호하는 법을 잇달아 만들었다.

이 흐름은 한국의 선택과 바로 맞닿는다. 수술 없이 쓰는 비침습 기기일수록 뇌 데이터는 병원 밖 일상에서 쌓인다. 유네스코 권고가 특히 경계한 대상이 소비자용 기기라는 점에서, 일반 소비자 시장을 겨냥한 한국의 전략은 기술 개발과 함께 뇌 데이터 규범을 갖추는 일을 전제로 깔게 됐다.

자료: UC 데이비스, 브라운대학교,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뉴럴링크, 싱크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KAIST, 엔젤로보틱스·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보루이캉·유네스코·경제협력개발기구(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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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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