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쇄한 인공 뉴런이 진짜 뇌를 깨우다…'잉크로 만드는 신경'의 최전선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7.23 15:28 · 수정 2026.09.07 11:11
인쇄한 인공 뉴런이 생쥐 소뇌와 교신했다 — 전력·시간척도 두 벽을 넘는 뉴로모픽의 다음 단계와 한국의 'Lab to Fab' 과제
인쇄한 인공 뉴런
에어로졸 제트 프린팅으로 인공 뉴런 회로를 인쇄하는 모습 (사진=노스웨스턴대 제공)

잉크로 인쇄한 전자소자가 살아있는 뇌세포에게 말을 걸었고, 뇌세포가 대답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2차원 반도체를 종이 찍듯 뿌려 만든 인공 신경세포로 생쥐 소뇌의 실제 뉴런을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지난 4월 실린 이 연구는 신기한 소자 자랑이 아니다. 그 밑에는 오래 풀리지 않던 두 개의 벽이 깔려 있다.

전력 폭식과 '시간척도'라는 두 벽

첫째는 에너지다. 지금의 인공지능(AI)은 더 똑똑해지려고 더 많은 데이터로 학습하고, 그만큼 전력을 먹는다. 연구를 이끈 마크 허샴 노스웨스턴대 교수(재료과학·화학·의공학)는 이 구조를 이렇게 짚었다. "AI를 똑똑하게 만드는 방법은 점점 더 많은 데이터로 학습시키는 것입니다. 그 데이터 집약적 훈련이 막대한 전력 소비 문제로 이어지죠." 그는 기술 기업들이 전용 원자력발전소로 전기를 대는 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며, 차세대 데이터센터가 원전 100개를 요구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안으로 지목돼 온 것이 뇌의 계산 방식을 흉내 내는 '뉴로모픽' 소자다. 허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디지털 컴퓨터보다 다섯 자릿수, 곧 10만 배가량 에너지 효율이 높다.

둘째 벽은 뜻밖에도 시간이다. 진짜 뉴런은 특정한 속도와 리듬으로 전압의 짧은 파도, 곧 스파이크를 쏜다. 그런데 기존 인공 뉴런은 이 생리학적 타이밍을 좀처럼 맞추지 못했다. 허샴 교수는 다른 연구실들이 유기물로 만든 소자는 스파이크가 너무 느렸고, 금속산화물로 만든 소자는 반대로 너무 빨랐다고 했다. 실제 뉴런과 대화하려면 그 사이의 좁은 창을 열어야 하는데, 아무도 제대로 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인공 뉴런은 단순한 신호 하나만 흉내 내, 복잡한 동작을 만들려면 소자와 전력을 겹겹이 쌓아야 했다.

완전히 지우지 않고, 반쯤 남긴다

프린팅 전자소자 자체는 새롭지 않다. 승부는 재료와 공정의 한 끗에서 갈렸다.

연구팀은 이황화몰리브덴(MoS₂) 나노시트와 그래핀으로 만든 전자 잉크를 에어로졸 제트 프린팅으로 유연한 고분자 기판에 뿌려 회로를 그렸다. MoS₂는 원자 몇 층 두께의 2차원 반도체로 신호를 다루고, 그래핀은 전극 역할을 한다. 소자 전체가 인쇄물이라는 뜻이다.

결정적 차별점은 지우는 방식에 있었다. 잉크에는 나노시트가 뭉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고분자가 들어간다. 기존 연구들은 회로를 그린 뒤 이 고분자를 완전히 태워 없앴다. 이 팀은 일부러 절반만 분해해 남겨뒀다.

그 상태에서 전류를 흘리자 남은 고분자가 자리마다 다른 속도로 추가 분해되면서, 좁고 가느다란 전도성 통로가 생겨났다. 전류가 이 통로에 몰리자 전압이 갑자기 확 튀는 급격한 반응이 나타났다. 물리학에서 '스냅백 음성미분저항'이라 부르는 현상으로, 이것이 문턱을 넘는 순간에만 켜졌다 저절로 꺼지는 스위칭을 만든다. 바로 이 급변이 뉴런의 스파이크를 빼닮은 파형을 빚어냈다. 완전히 지우지 않고 반쯤 남긴다는 역발상 하나가, 인공 뉴런이 구사하는 신호의 문법을 바꾼 셈이다.

이렇게 만든 소자는 한 번 툭 치는 단발 스파이크, 쉼 없이 이어지는 연속 발화, 짧게 몰아치는 다발 발화를 하나의 소자에서 모두 만들어냈다. 논문에 따르면 100만 회를 넘는 반복 동작에서도 특성이 유지됐다.

생쥐 소뇌가 대답했다

검증은 신경과학자의 손을 거쳤다. 공동 연구자인 인디라 라만 노스웨스턴대 신경생물학 교수팀이 생쥐 소뇌의 퍼킨지 뉴런 절편에 이 인공 뉴런의 신호를 넣자, 살아있는 뉴런이 실제로 반응했다. 퍼킨지 세포는 소뇌에서 운동 조절 신호를 내보내는 대형 신경세포다.

허샴 교수는 "살아있는 뉴런이 우리 인공 뉴런에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인공 뉴런에서 이전에 입증된 적 없는 시간 범위 안에 들어와 있고, 시간 척도만 맞는 것이 아니라 실제 뉴런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올바른 스파이크 모양의 신호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전자공학과 생체 신경 사이에 통역을 끼운 것이 아니라 직접 통화가 이뤄진 셈이다.

과장은 금물이다. 이번 실험은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 몸 밖으로 떼어낸 뇌 절편 수준이다. 논문과 연구팀이 명시한 한계는 아니지만, 이식형 장치로 가려면 생체적합성과 면역 반응, 수년에 걸친 장기 안정성이라는 관문이 차례로 남는다.

한국의 인공 뉴런은 어디쯤 있나

이 분야에서 한국은 소자를 만들고 촘촘히 쌓는 쪽에 강점을 보여 왔다. 광주과학기술원 이상한 교수팀은 서울대 장호원 교수팀, 국민대 이윤정 교수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조슈아 양 교수와 함께 뉴로모픽 반도체의 두 난제를 하나의 소자로 푼 결과를 지난 7월 발표했다.

난제란 이런 것이다. 같은 세기의 전기 자극을 반복해도 정보가 일정한 폭으로 쌓이지 않는 문제, 그리고 옆 소자로 전류가 새어 나가는 누설 문제다. 지금까지는 누설을 막으려고 메모리 소자마다 차단용 선택소자를 따로 붙여야 했고, 그만큼 구조가 복잡해지고 집적도가 떨어졌다. 연구팀은 강유전체인 비스무트 철 산화물(BiFeO₃)에 바륨을 섞어 전류를 한 방향으로만 흘리는 기능을 메모리 소자 안에 집어넣었다. 별도 선택소자 없이 121개 셀을 격자로 엮은 어레이에서 글자와 이미지를 쓰고 지우는 데 성공했고, 1000만 회 넘는 반복에도 특성이 유지됐다. 결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정부의 시선도 같은 방향이다. 관계부처가 2024년 4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함께 올린 'AI-반도체 이니셔티브'는 지금의 'GPU+메모리' 중심 반도체가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 급증과 비용 증가 탓에 AI 발전을 계속 떠받치기 어렵다고 진단하고, 그 처방으로 차세대 NPU와 뉴로모픽 신소자를 지목했다. 이 문서가 인용한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망은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 최대 1,050TWh로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일본 한 나라의 연간 전력 수요에 육박하는 규모다. 계획에는 2028년까지 온디바이스용 뉴로모픽 AI프로세서를 상용화한다는 목표가, 근거로는 KAIST가 2024년 3월 선보인 뉴로모픽 AI반도체가 적혀 있다. 삼성 28나노 공정으로 만들어 엔비디아 A100 대비 전력을 625분의 1로 줄이고 언어모델 GPT-2를 0.4와트로 돌린 칩이다.

대비는 여기서 드러난다. 국내의 목표와 성과는 '연산을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하느냐'에 맞춰져 있다. 노스웨스턴 연구가 연 문은 그 옆에 있다. 살아있는 조직과 직접 신호를 주고받는 자리다.

'Lab to Fab' 간극과 프린팅이라는 우회로

같은 정부 문서는 국내 신소자 연구의 약한 고리도 함께 짚었다. 소자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양산에 적용되기까지 "큰 간극"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능형 소자를 만드는 반도체 공정이 해외 극소수 파운드리에서 특정 그룹에만 제공되는 서비스여서 국내 연구자의 접근성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제품을 찍어볼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번 노스웨스턴 연구가 국내 연구 환경에 던지는 실질적인 시사는 그래서 소재보다 공정 쪽에 있다. 잉크를 뿌려 회로를 그리는 방식은 첨단 파운드리 라인을 예약하지 않고도 연구실에서 소자를 만들어 검증할 수 있는 경로다. 정부가 계획에 담은 'Lab to Fab 스케일업 플랫폼'과 한계도전형 신소자 과제가 겨냥하는 지점도 이 간극이다.

같은 문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뉴로모픽 컴퓨팅 분야에서 공동 펀딩 기반 협력 연구를 추진한다는 계획도 담았다. 다만 그 협력의 축은 컴퓨팅과 첨단 패키징이다. 이번 노스웨스턴 결과가 소재과학·전자공학·신경과학이 한 팀으로 묶여야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국내 계획서에서 신경과학과 맞닿는 항목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실제 뉴런과 대화하는 소자를 만들었다'와 '사람 몸에서 작동하는 신경보철이 됐다' 사이에는 여전히 긴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연구의 값어치는 분명하다. 2차원 반도체라는 소재, 프린팅이라는 공정, 그리고 고분자를 반쯤 남긴다는 물리적 통찰이 만나 아무도 못 맞추던 생체와 같은 시간척도를 실제 뇌 조직에서 증명했다. 다음 10년 바이오전자와 뉴로모픽 컴퓨팅의 최전선이 어디에 그어질지를 보여준 좌표다.

자료: 노스웨스턴대학교,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광주과학기술원, 서울대학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제에너지기구(I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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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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