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테라파워 SMR 협력 확대…캐머러 1호기 참여 방안 논의

한국 기업이 미국의 차세대 소형모듈원전 건설에 투자뿐 아니라 원자로 제작과 시공·운영 분야까지 참여할 길이 넓어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4일 서울에서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을 만나 테라파워의 소형모듈원전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주요 설비를 비교적 작은 모듈 형태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원전이다. 이번 면담에서는 테라파워가 미국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이 기자재 공급, 운영, 시공 등 여러 역할에 참여하는 방안이 다뤄졌다. SK와 HD현대 등은 앞서 테라파워에 재무적으로 투자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면담 직후 테라파워와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공동사업 추진계약을 위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문서는 최종 공동사업 계약이 아니라 앞으로 체결할 계약의 핵심 조건을 정한 합의서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업 범위나 수주가 확정된 단계로 볼 수는 없다.
협력의 중심에는 테라파워가 개발한 ‘나트륨(Natrium)’ 원자로가 있다. 나트륨은 물 대신 액체 소듐으로 원자로의 열을 식히는 345MWe급 소듐냉각고속로와 용융염 열저장장치를 결합한 설계다. 전기가 더 필요할 때 저장한 열을 이용해 수 시간 동안 최대 500MWe까지 출력을 높일 수 있다.
연료로는 HALEU 금속연료를 사용한다. HALEU는 기존 상업용 원전 연료보다 우라늄 농축도를 높인 고순도 저농축우라늄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 내 HALEU 공급 능력이 매우 제한돼 있으며, 이 문제가 첨단원자로 배치의 중대한 장애라고 밝히고 있다. 원자로 건설과 별개로 안정적인 연료 공급망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첫 사업인 캐머러 1호기는 미국 와이오밍주 노턴 석탄발전소 인근에 건설된다. 폐쇄 예정인 석탄발전소 주변의 기존 송전망과 용수 인프라, 지역 인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발전원을 전환하는 사업의 성격도 갖는다.
테라파워는 2024년 3월 건설허가를 신청하고 같은 해 6월 원자로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시설의 공사를 시작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26년 3월 9일 테라파워 자회사 US SFR Owner에 캐머러 1호기 건설허가 CPAR-1을 발급했다. 미국 규제기관이 상업용 비경수로에 내준 첫 건설허가다. 테라파워는 이어 2026년 4월 원자로 건설에 착수했다.
다만 건설허가는 원전을 상업적으로 가동해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다. 실제 가동에 들어가려면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별도 운영허가가 필요하다. 건설 진척과 함께 안전 심사와 연료 공급 문제도 계속 확인해야 한다.
나트륨 사업은 미국 에너지부의 첨단원자로실증프로그램이 지원하는 두 개의 선도 실증사업 가운데 하나다. 에너지부는 2020년 테라파워에 초기 지원금 8천만달러를 배정했으며, 이후 설계와 인허가, 건설, 실증에 연방정부가 약 2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참여도 일부 구체화됐다. HD현대는 2024년 테라파워로부터 나트륨 원자로의 원통형 원자로 용기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장관 면담과 주요 조건 합의서는 이러한 기존 투자·제작 협력을 글로벌 공동사업으로 넓히기 위한 논의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기업별 기자재 공급 범위와 운영·시공 역할, 수주 규모와 최종 계약 여부는 아직 공개된 내용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자료: 산업통상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미국 에너지부(DOE), HD현대, 테라파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