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두 번 읽어 진짜·가짜 가린다…복제 어려운 ‘인공 지문’ 개발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09.07 15:20
무작위 콜로이드 나노 패턴에서 반사광·회절광을 읽는 물리적 복제 방지 기술
빛 두 번 읽어 진짜·가짜 가린다…복제 어려운 ‘인공 지문’ 개발
KAIST 김상욱 교수(왼쪽)와 연구팀이 나노 패턴을 이용한 인공 지문 시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KAIST)

나노입자가 우연히 만든 무늬 하나가 제품과 전자기기의 ‘인공 지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상욱 교수 연구팀과 성균관대학교 권석준 교수 연구팀은 복제하기 어려운 콜로이드 나노 패턴을 빛으로 읽어 진위를 가리는 물리적 인증 기술을 개발했다.

콜로이드는 매우 작은 입자가 다른 물질 속에 흩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연구진은 이런 입자들이 한 층으로 모일 때 생기는 불규칙한 배열을 보안 정보로 활용했다. 제작 조건이 같더라도 입자가 놓이는 위치와 결정립의 구조는 우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모양을 의도적으로 다시 만드는 일이 어려운 이유다.

이 기술은 ‘물리적 복제 방지 기능(PUF)’에 해당한다. PUF는 제조 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미세한 차이를 제품의 고유 식별자나 질의·응답 키로 쓰는 하드웨어 보안 방식이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도 무작위 제조 편차를 이용해 변경하기 어려운 기기 식별자를 만들고 위조품을 가려내는 기술로 설명한다.

이번 라벨은 한 변이 1㎝인 면적에 평균 크기 약 20㎛인 결정립 약 8만 개를 담는다. 연구진은 백색광을 비췄을 때 나타나는 브래그 반사와 532㎚ 녹색 레이저를 비췄을 때 생기는 회절을 각각 읽었다. 브래그 반사는 일정한 간격의 구조가 특정 빛을 강하게 되돌려 보내는 현상이며, 회절은 빛이 미세 구조를 지나며 여러 방향으로 퍼져 고유한 무늬를 만드는 현상이다. 하나의 무작위 구조에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정보를 꺼내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라벨 50개를 네 입사각에서 측정해 얻은 200개 응답으로 반사광 기반 64비트 키를 검증했다. 서로 다른 라벨 사이의 해밍거리 평균은 0.501±0.036, 같은 라벨을 반복 측정한 값은 0.007±0.005였다. 해밍거리는 두 디지털 값에서 서로 다른 비트의 비율이다. 서로 다른 키라면 0.5에 가까울수록 잘 구분되고, 같은 키를 다시 읽었다면 0에 가까울수록 재현성이 높다는 뜻이다.

회절 응답에서도 서로 다른 값의 해밍거리는 0.499±0.039 또는 0.500±0.038, 반복 측정값은 0.011±0.008로 보고됐다. 지름 600㎛의 레이저 빔을 이용하면 한 라벨에서 100곳 이상을 읽을 수 있다. 연구진은 반사광 키 약 10의 20제곱 개와 100개 지점의 순열·회절 키 약 10의 164제곱 개를 합쳐 10의 184제곱 개가 넘는 조합이 가능하다고 계산했다. 다만 이 수치는 위조 공격시험에서 입증한 성공률이 아니라 구조와 판독 지점을 바탕으로 산출한 이론적 경우의 수다.

연구진은 2022년에도 블록공중합체가 만드는 최소 3㎚ 무작위 패턴에서 전기저항과 광학 이색성, 라만 신호를 읽는 다중 키 PUF를 발표했다. 당시 방식은 밀리초 단위 판독을 제시했지만 현미경과 전기·분광 측정이 필요했다. 이번 연구는 수백 나노미터에서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콜로이드 단층을 이용해 반사와 회절 무늬를 가시광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판독 접근성을 넓힌 후속 흐름이다.

손전등과 레이저 포인터로 패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위조품 식별과 전자기기 인증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정밀한 회절 키 실험에는 56mW·532㎚ 고정 레이저와 전동 XY 스캐너가 사용됐고, 일반 사용자용 장치는 좌표 구멍 50개를 둔 3D 프린팅 시제품이었다. 따라서 스마트폰과 레이저 포인터만으로 전체 인증 과정이 자동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PUF는 양자내성암호를 대신하는 암호 체계라기보다 제품과 기기의 물리적 인증을 보완하는 기술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성균관대학교, Springer Nature,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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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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