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웹이 읽은 외계 행성계의 ‘돌가루 지문’…21곳 중 8곳서 화성급 충돌 흔적

사고 순간을 보지 못했어도 현장에 흩어진 유리 가루와 금속 파편을 살피면 충돌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멀리 떨어진 행성계의 과거를 추적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과 스피처우주망원경이 모은 빛에서 미세한 ‘돌가루의 적외선 지문’을 읽은 결과, 극한 잔해원반 21곳 중 8곳, 약 38%에서 실리카가 강하게 나타났다. 대략 5곳 중 2곳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이 먼지가 화성과 비슷한 크기의 행성배아가 관여한 고에너지 충돌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화성의 평균지름은 약 6,779㎞로 달의 약 3,475㎞보다 두 배 가까이 크다. 다만 웹이 행성이나 충돌 순간을 촬영한 것은 아니다. ‘화성급’이라는 표현도 사진으로 잰 충돌체의 크기가 아니라 먼지의 광물 조성을 충돌모형과 비교해 추론한 사건 규모다. 제목의 ‘행성 파괴 현장’은 이 간접 증거를 압축한 비유이며, 행성 전체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따뜻한 먼지가 유난히 많은 희귀한 행성계
케이트 Y. L. 수 미국 우주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극한 잔해원반(extreme debris disk·EDD) 21곳의 중적외선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극한 잔해원반은 따뜻한 먼지가 비정상적으로 많고 적외선 밝기가 변하는 희귀한 잔해원반이다. 대표적으로 별빛의 약 1% 이상을 먼지가 흡수한 뒤 적외선으로 다시 내보내며, 22∼24㎛ 파장에서는 별 자체가 내는 빛보다 10배에서 수백 배 강한 중적외선 과잉을 보인다. 비슷한 연령의 잔해원반 가운데 이런 계가 나타나는 비율은 약 1%다.
따라서 이번 표본은 일반적인 외계행성계 21곳을 무작위로 뽑은 것이 아니다. 이미 따뜻한 먼지와 강한 적외선 초과가 알려진 특수한 계를 골라 살핀 결과다. 38%라는 수치를 전체 외계행성계나 젊은 별의 38%가 화성급 충돌을 겪는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표본 가운데 16곳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중적외선 관측장비 MIRI로 관측했고, 5곳은 스피처 보관자료를 이용했다. 웹 표본 중 12곳에서는 4.9∼27.9㎛ 전 구간의 스펙트럼을 새로 얻었으며, 나머지 4곳은 과거 스피처가 본 대상을 웹으로 다시 관측했다. 연구진은 특히 7.2∼13.5㎛ 구간에 나타나는 10㎛ 규산염 방출 특징을 지수화해 실리카와 결정질 규산염의 상대적인 세기를 비교했다.
머리카락 굵기의 70분의 1, 먼지가 말해준 충격
관측된 먼지는 주로 크기가 1㎛보다 작은 서브마이크론 입자였다. 머리카락 굵기를 약 70㎛로 잡으면 70분의 1보다 작은 알갱이다. 이 작은 먼지에는 실리카와 결정질 규산염처럼 강한 열처리를 거친 물질이 많았다. 실리카는 보통 1,200∼1,800K에서 응축하며 고압에서는 수천 K까지 조건이 올라갈 수 있다. 결정질 규산염의 하나인 포스테라이트는 약 1,000∼1,200K에서 형성되거나 열처리된다.
연구진은 정한 실리카 지수의 문턱을 기준으로 8곳을 실리카 풍부형, 13곳을 실리카 부족형으로 나눴다. 실리카 풍부형 비율은 38%로, 오차 범위는 +11%포인트와 -9%포인트다. 다만 두 집단이 자연에서 완전히 갈라져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광물 조성은 연속적이며, 실리카 풍부형에도 감람석과 휘석이 섞일 수 있다. ‘실리카 부족’ 역시 실리카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리카가 강하다는 것은 암석이 단순히 부서지는 수준을 넘어 일부가 녹거나 기화한 뒤 빠르게 식어 미세한 유리질 먼지로 응축됐다는 그림과 맞는다. 연구진은 실리카 풍부형을 화성 크기 행성배아가 관여한 고에너지 충돌과 연결했다. 충돌모형에서는 약 40㎞/초를 넘는 속도가 강한 기화와 관련된 비교 사례로 제시된다. 서울과 부산의 직선거리 약 325㎞를 약 8초에 가는 속도지만, 이는 이번 21곳에서 실제로 측정한 충돌속도가 아니다.
반대로 실리카 부족형은 달 크기 천체의 충돌이나 속도가 낮고 비스듬히 스치는 사건처럼 상대적으로 약한 충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제안이다. 그러나 충돌 뒤 남는 광물은 천체의 크기뿐 아니라 속도와 각도, 조성, 내부구조에도 좌우된다. 먼지 성분만으로 충돌체의 지름을 하나의 값으로 역산할 수는 없다.
젊은 계에서 강한 흔적…그러나 ‘3억 년 경계’는 아니다
실리카 풍부형 8곳은 연구진이 채택한 항성 연령값을 기준으로 모두 약 3억 년 미만이었다. 나이가 다른 행성계를 함께 비교하는 방식은 한 행성계의 수억 년을 기다리는 대신 성장 단계가 다른 스냅사진을 늘어놓는 것과 비슷하다. 젊은 시기에 행성배아 사이의 격렬한 충돌이 더 자주 일어났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3억 년을 확정적인 경계로 볼 수는 없다. 전체 표본의 약 85%가 3억 년 미만이고, 그보다 오래된 비교 대상은 3곳뿐이다. J1213의 나이도 1억5천만 년을 넘는다는 하한값만 있어 실제로는 3억 년보다 오래됐을 수 있다. 항성 나이 자체도 리튬, 자전, 자기활동, 운동학 등 서로 다른 방법과 문헌값을 조합한 추정치다.
오래된 세 원반은 모두 실리카 부족형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거대행성 이동이나 궤도 재편에 따른 후기 불안정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행성이나 궤도 재편을 직접 검출한 것은 아니며, 태양계의 후기 대폭격기와 같은 사건을 입증한 것도 아니다.
가루의 종류는 비슷했지만 밝기는 계속 달라졌다
극한 잔해원반의 적외선 밝기는 주·개월·연 단위로 불규칙하게 변했다. 약 15년에 걸친 WISE 추적자료와 1983∼2022년의 기존 중적외선 자료를 웹의 2023∼2024년 관측과 비교하자, 밝기가 감소한 사례가 상대적으로 더 자주 나타났다. 수십 년 사이 10㎛ 특징의 전체 모양은 대체로 유지됐다. 가루의 종류는 비슷한데 공중에 떠 있는 양과 배치가 달라진 셈이다. 다만 일부 장기 비교는 스펙트럼이 아닌 넓은 파장대의 밝기를 합친 광대역 측광에 의존했다.
밝기 변화가 나타내는 먼지의 합산 단면적은 1.85×10⁻⁴∼1.60×10⁻²au²로 환산됐다. 태양 크기 별의 표면과 비교하면 2.7∼233배다. 이는 먼지의 실제 표면적이나 질량이 아니라 빛을 내는 입자들이 차지하는 투영 면적의 합이며, 먼지가 광학적으로 얇고 온도가 일정하고 밝기 변화가 오직 방출면적 변화에서 생긴다고 가정한 최솟값이다. 연구진도 온도가 일정하다는 가정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광물 조성과 변광성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이 나오지 않았다. 실리카가 많은 원반일수록 더 크게 깜박인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는 뜻이다. 현재의 밝기 변화가 최초 충돌을 보여주는지, 충돌 뒤 남은 파편들이 다시 부딪치고 퍼지는 ‘사고 현장의 뒷정리’인지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실리카 역시 거대충돌만의 고유 표지는 아니다. 표본에 포함된 실리카 풍부형 HD 145263에 대해서는 항성의 슈퍼플레어가 일으킨 우주풍화로 광물 조성을 설명한 동료심사 연구가 있다. 실리카의 형태, 감람석·휘석의 혼합비, 원소 비율, 입자 모양과 기공률이 서로 비슷한 스펙트럼을 만들 수도 있다. 충돌 시뮬레이션도 주로 미세먼지보다 큰 파편을 추적해 충격 열역학과 암석 증기가 먼지로 응축되는 과정을 충분히 계산하지 못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충돌을 확정했다는 데 있지 않다. 직접 촬영하기 어려운 행성배아의 충돌을 먼지 광물학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는 관측 틀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2026년 10월 7일 현재 21개 표본 전체에 대한 독립 재현과 공개 분석 코드 저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개자료를 이용한 재분석과 더 많은 고령 원반 관측이 이어져야 실리카, 충돌 규모, 행성계 나이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가려낼 수 있다.
자료: 미국 우주과학연구소, 미국 항공우주국, 유럽우주국, 캐나다우주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