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물을 튕기고 아연은 끌어당겼다…1Ah급 수계 아연전지를 700시간 움직인 하이드로겔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07 20:21
불소기로 물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쌍극이온으로 Zn²⁺ 통로 형성…손바닥 크기 파우치셀 확장 가능성과 느린 충·방전의 한계를 함께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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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a Klawikowski

물로 작동하는 배터리에서 물은 도로이자 녹의 원료다. 아연 이온이 오가는 길을 열어 주지만, 동시에 아연을 부식시키고 수소 기포와 뾰족한 덴드라이트를 만드는 반응에도 참여한다. 그렇다고 물을 지나치게 붙잡으면 이온의 길까지 막힌다. 칭화대학교 선전국제대학원 중심 연구진은 이 모순을 풀기 위해 물을 튕기는 불소기와 아연 이온을 끌어당기는 쌍극이온을 하나의 젤 안에 넣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전해질은 ‘PAFS HE’다. 정식 명칭은 poly(acrylamide–trifluoroethyl acrylate–sulfobetaine methacrylate)로, 아크릴아마이드와 2,2,2-트리플루오로에틸 아크릴레이트, 설포베타인 메타크릴레이트를 하나의 고분자망으로 엮은 삼원공중합 하이드로겔이다. 이 젤을 적용한 약 1Ah의 Zn‖MnO₂ 파우치셀은 0.01A·g⁻¹에서 약 40회 충·방전하며 700시간 넘게 작동했다. 700시간은 약 29일이지만 700회가 아니다. 한 주기가 평균 약 17.5시간에 이르는 매우 느린 시험이었다.

물을 없애지 않고 ‘자리’를 바꿨다

수계 아연전지는 물을 기반으로 한 전해질에서 Zn²⁺, 즉 전하를 두 개 띤 아연 이온을 움직인다. 문제는 물이 아연 표면에서 원치 않는 화학반응도 일으킨다는 점이다. 부식과 수소 발생, 부산물 축적이 이어지면 전극과 전해질의 접촉이 무너질 수 있다. 아연이 고르게 쌓이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자라는 덴드라이트도 수명을 해치는 원인이다.

PAFS의 세 성분은 역할을 나눴다. 아크릴아마이드의 친수성 아마이드기인 –CONH₂는 물을 담아 이온이 움직일 기본 환경을 만들었다. 불소알킬기 –CH₂CF₃는 물을 직접 없애거나 강하게 수소결합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 물의 위치와 이동성을 제한하고 물을 인접한 친수성 자리 쪽으로 재배치해, 친수성기와 물의 결합을 간접적으로 강화했다.

쌍극이온기 –SO₃⁻/–N⁺(CH₃)₃는 한 작용기 안에 음전하와 양전하를 함께 가진 구조다. 이 작용기는 Zn²⁺와 상호작용해 아연 이온이 풍부한 친수성 이동 경로를 만들었다. 젤리 안에서 불소기는 물의 움직임을 정돈하고 쌍극이온은 아연 이온이 다닐 길을 낸 셈이다. 물에 잘 섞이지 않는 불소계 단량체는 sodium dodecyl sulfate로 안정화했으며, 이 물질은 물리적 가교 형성에도 기여했다. 전구체는 ZnSO₄ 수용액에서 자외선으로 중합됐다.

라만 스펙트럼을 나눠 분석한 결과 강하게 결합된 물의 비율은 PAFS에서 19.19%, 일반 polyacrylamide 하이드로겔인 PAAm에서 11.66%였다. 다만 이는 물 전체가 비활성화됐다는 뜻이 아니다. 분자동역학 계산에서 물과 친수성 단위의 상호작용 에너지는 PAAm 0.63kcal·mol⁻¹, PAFS 0.67kcal·mol⁻¹로 차이가 작았다. 핵심은 물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부반응 억제와 이온 이동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었다.

이온의 속도와 방향성을 함께 확보했다

25±2℃, 두께 1,000μm 조건에서 PAFS의 이온전도도는 24.7mS·cm⁻¹였다. 같은 조건의 PAAm은 13.3, 불소기는 있지만 쌍극이온기가 없는 PAF는 10.3, 액체 전해질은 31.3mS·cm⁻¹였다. 액체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다른 두 젤보다는 높은 전도도를 보였다.

Zn²⁺ 전달수는 0.76이었다. 전달수는 전해질을 흐르는 전체 이온 전류 가운데 Zn²⁺가 담당하는 몫을 나타내며, 배터리 효율이 76%라는 뜻은 아니다. 비교군인 PAAm은 0.50, PAF는 0.29였다. 기존 하이드로겔의 보고 범위가 0.28~0.88이므로 0.76을 최고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젤의 기계적 성질과 전극 접착도 확인됐다. PAFS는 인장응력 71.1kPa, 파단신율 290.6%, 인성 90.7kJ·m⁻³를 보였다. 아연 접착강도는 12.1kPa로 PAAm의 2.7kPa보다 높았다. 부식전류밀도는 액체 전해질 0.33, PAAm 0.28, PAFS 0.21mA·cm⁻²였다. 충·방전 뒤 아연 표면의 평균 거칠기는 액체 전해질에서 210nm, PAFS에서 37nm로 새 젤 쪽이 약 5.7배 덜 거칠었다.

아연 표면에서는 ZnF₂, ZnS, ZnO와 비정질 유기물이 섞인 고체전해질계면, 즉 SEI가 관찰됐다. SEI는 전극과 전해질 사이에 생기는 보호막과 같은 층이다. 연구진은 단단한 무기 성분과 변형을 받아들이는 유기 성분의 조합이 덴드라이트와 계면 파손을 억제했다고 해석했다. 계면 성분의 존재는 분석으로 확인됐지만, 각 성분이 수명을 얼마나 늘렸는지에 관한 인과관계는 연구진의 해석이다.

동전형에서 손바닥 크기로

Zn‖Zn 대칭전지는 5mA·cm⁻²에서 회당 5mAh·cm⁻²를 도금하고 벗기는 조건으로 900시간 넘게 작동했다. 약 37.5일 동안 약 450회의 도금·박리를 거쳤고 누적 면적용량은 2.25Ah·cm⁻²였다. 그러나 대칭전지는 양극 열화가 없는 시험이어서 완전한 배터리의 수명과 같지 않다. Zn‖Cu 전지는 1mA·cm⁻², 0.5mAh·cm⁻² 조건에서 500회 동안 약 99.3%의 쿨롱효율을 보였다.

약 1mg·cm⁻²의 얇은 MnO₂ 양극을 사용한 코인셀은 1A·g⁻¹에서 1,500회 뒤 초기 용량의 70%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이어 MnO₂ 로딩을 약 100mg·cm⁻²까지 높인 약 10×10cm 크기의 파우치셀을 만들었다. 손바닥 폭 정도의 셀로, 용량은 약 1Ah였다. 다만 Ah는 전하량이며 전압을 곱한 Wh와는 다르므로 스마트폰 배터리와 숫자만으로 비교할 수 없다.

이 약 1Ah 셀은 0.01A·g⁻¹에서 약 40회, 700시간 넘게 작동했다. 별도로 제작한 약 7×8cm 크기의 0.4Ah 셀은 같은 0.01A·g⁻¹에서 70회·1,000시간 넘게 작동하며 80%가 넘는 용량 유지율을 보였다. 두 결과는 서로 다른 셀의 기록이다. 1Ah 셀이 1,000시간 동안 80% 이상을 유지한 것으로 합쳐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확장의 가능성, 상용성은 아직 별개

이번 결과의 의미는 얇은 전극을 쓴 동전형 실험전지를 넘어, 활물질을 많이 올린 Ah급 파우치 형태까지 전해질 설계를 확장했다는 데 있다. 소수성기와 친수성기를 조합하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공개심사 지적도 있었다. 연구의 상대적 새로움은 불소계 소수성기와 Zn 친화성 쌍극이온기를 한 삼원공중합체에 결합하고, 충·방전 뒤 생성된 계면 성분을 상세히 분석한 데 있다.

그러나 아직 전력망용 에너지저장장치의 수명이나 상용 경쟁력을 입증한 결과는 아니다. 1Ah 셀의 시험 속도는 매우 낮고 반복수도 약 40회에 그쳤다. 코인셀의 1,500회 결과는 MnO₂ 로딩이 약 1mg·cm⁻²인 조건이어서 약 100mg·cm⁻² 파우치셀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고로딩 전극에서는 활물질 이용률도 낮았다.

두꺼운 전극의 농도분극과 옴 저항, 수소 발생에 따른 전해질 고갈, 젤과 전극의 접촉 손실, 넓은 면적에서의 불균일한 전기장, 덴드라이트와 비활성 아연 형성도 남은 문제다. 마지막 몇 회에는 용량과 쿨롱효율의 변동이 나타났으며 연구진은 점진적인 전해질 손실과 과충전 가능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젤 두께도 1mm로, 종이 여러 장을 겹친 정도여서 셀의 질량과 부피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셀 전체 에너지밀도와 전해질·용량비, 제조수율과 비용은 제시되지 않았다. 건조와 팽윤, 반복 압력 변화, 천공·과충전 안전성, 보관수명, 가스 발생, 셀 간 편차와 대량생산 수율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불소계 단량체의 가격과 전 과정 환경영향, 재활용·폐기 문제, 규제상 PFAS 해당 여부 역시 평가되지 않았다.

논문은 2026년 10월 1일 공개됐으며 조사 시점인 10월 7일까지 독립 연구진의 재현 성공이나 직접적인 반론은 확인되지 않았다. 공개된 지 6일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이번 성과는 물의 반응성과 이온 이동성을 한 젤에서 조절할 수 있다는 설계와 Ah급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단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 ESS용 전지가 되려면 더 빠른 충·방전, 훨씬 많은 반복, 얇은 전해질과 제조 편차까지 견디는 후속 검증이 필요하다.

자료: 칭화대학교 선전국제대학원, Springer Nature, 가천대학교, 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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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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