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후보 3천개 쌓아둔 한국, 이번엔 'AI로 빨리 만들기'에 2500억 건다

후보물질만 3000개 넘게 쌓아두고도 정작 시장에 내놓지 못한다면, 창고에 재고만 가득한 셈이다. 정부가 겨냥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관련 사업에 2549억 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후보물질을 실제 신약으로 바꾸는 '속도'에 승부를 걸었다. 목표는 신약을 찾아내는 기간을 90% 줄이는 것이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내년도 AI 신약 개발 투자 계획을 최근 확정했다. 핵심은 국가 대형 연구개발(R&D) 사업인 'K문샷 프로젝트'의 AI 신약 미션이다. 문샷(moonshot)은 달 탐사처럼 대담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뜻하는 말로, 정부가 이 분야를 국가적 도전 과제로 규정했다는 의미다.
양은 세계 3위, 문제는 '속도'
한국의 신약 파이프라인은 2026년 1월 기준 3259개로 세계 3위 수준이다. 파이프라인은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숫자만 보면 신약 강국이지만, 실제 성과는 그에 못 미친다. 국내 의약품 시장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그친다.
후보물질이 임상시험 단계로 넘어가는 속도도 더디다. 국내 제약기업이 자체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에 진입한 건수는 2024년과 2025년 모두 각각 4건에 머물렀다. 후보는 많은데 실제 개발로 이어지는 통로가 좁은 것이다. 과기정통부가 산·학·연 관계자 163명을 대상으로 개발 과정의 주요 애로사항을 조사한 것도 이 병목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후보 찾기' 시간을 10분의 1로
이번 투자의 방향은 분명하다. 신약을 만드는 전 과정 중에서도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초기 단계를 AI로 대폭 앞당기는 것이다. 정부는 2035년까지 신약 발굴 기간을 90% 단축하고, 개발 속도를 현재의 10배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 결과물로 AI가 직접 설계한 혁신 신약 후보물질 3종을 임상 단계에 진입시키는 것을 구체적인 성과 지표로 잡았다.
K문샷 AI 신약 미션은 두 개의 세부 사업으로 짜여 있다. 하나는 'AI-자율 실험 기반 차세대 신약 연구 거점 구축', 다른 하나는 '암 면역 미세환경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로 미리 학습시켜 여러 과제에 두루 활용하는 기반형 AI 모델을 말한다. 두 사업에는 내년 국비 322억 원이 배정되며, 2030년까지 4년간 총 1845억 원이 투입된다.
나머지 예산은 AI 신약 개발의 토대를 다지는 사업들에 나뉘어 들어간다. 디지털 세포를 구축하는 사업, AI 신약 플랫폼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사업, AI 정밀의료 연구 거점을 세우는 사업, 그리고 흩어진 바이오 데이터를 한데 모으는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사업 등이 내년부터 함께 추진된다. 정부는 이 데이터 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고품질 바이오 빅데이터 700만 건 이상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양적 3위를 질적 우수성으로"
남진우 K문샷 추진단 AI 신약 미션 PD(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번 사업을 두고 "양적으로는 세계 3위인 대한민국 신약 생태계의 질적 향상을 이끄는 국가적 도전"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내년부터 AI로 개발한 신약이 규제 승인 시험대에 오르는 가운데, 국내 신약 기업도 서둘러 격차를 줄이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목표 달성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남아 있다. AI 신약 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의 양과 질인데, 국내는 임상 후기 단계 데이터와 이를 다룰 AI 모델이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30년까지 확보하겠다는 700만 건의 바이오 빅데이터가 계획대로 쌓이고, 여기서 나온 AI 설계 후보물질이 실제 규제 승인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가 향후 성과를 가를 관건으로 꼽힌다.
참고 자료
· 과기정통부, 내년 AI 신약 개발에 2500억 투입…개발기간 90% 단축 — 전자신문 (2026.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