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이력 공개, 낙인이 아니라 신뢰의 설계여야 한다

의료사고 이력 공개를 ‘환자 대 의사’의 싸움으로 만들면 둘 다 진다. 환자는 생명을 맡길 정보를 잃고, 의사는 위험한 환자를 맡을수록 낙인이 커질까 두려워한다. 필자는 공개 자체보다 공개의 문법이 핵심이라고 본다. 감추는 제도도, 맥락 없이 이름과 건수만 내거는 제도도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정보 비대칭은 이미 불신을 키운다
이소희 의원이 마련한 국회 토론회의 문제 제기는 단순하다. 환자는 병원 광고와 홍보는 쉽게 보지만, 진료할 의료인의 의료사고 관련 확정판결 이력은 사실상 확인하기 어렵다. 토론회는 공개 대상·기간·범위와 의료인 보호 장치를 함께 다루도록 마련됐고, 관련 법률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확정판결은 의혹이나 온라인 평판과 다르다. 국가의 판단 절차를 끝낸 정보다. 생명과 신체를 맡기는 선택에서 이 최소한의 정보마저 환자에게 닫아 둘 명분은 약하다.
‘사고 건수’가 아니라 해석 가능한 기록을
다만 모든 나쁜 결과를 같은 색으로 칠해서는 안 된다. 중증·응급·분만처럼 원래 위험이 큰 진료는 좋은 의료진에게도 사고 가능성이 따라붙는다. 단순 건수표는 어려운 환자를 많이 맡은 사람을 오히려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공개는 확정판결로 한정하고, 과실의 내용, 반복 여부, 발생 시점, 처분 결과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환자의 중증도와 진료량을 함께 보는 ‘위험도 보정’, 즉 같은 조건끼리 비교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정정·이의신청과 일정 기간 뒤 공개 종료 역시 갖춰야 한다.
투명성과 안전망은 한 묶음이다
필수의료 위축 우려를 핑계로 비공개를 고집해서도 안 되지만, 공개만 해놓고 위험을 개인 의사에게 떠넘겨서도 안 된다. 정부가 필수의료 배상보험료 지원 대상을 응급의학과로 넓히고, 올해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가 중과실이 없고 손해 전액이 배상된 필수의료 사고를 형사재판에 넘기는 것을 제한하는 개정안 대안을 의결한 흐름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가는 반복 과실에는 더 엄격하고, 불가피한 위험에는 더 두꺼운 배상과 조정으로 답해야 한다. 환자는 빨리 설명받고 보상받으며, 의료진은 정당한 진료가 파산과 형사처벌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신뢰는 정보를 숨겨서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데이터만 던져준다고 생기지도 않는다. 무엇을 왜 공개하는지 설명하고, 그 위험을 사회가 함께 부담할 때 공개는 낙인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알 권리와 필수의료 중 하나가 아니라, 둘을 동시에 지키는 정교한 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