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MIT, 위산 속에서 3일간 작동 후 스스로 녹아 사라지는 '삼킬 수 있는 종이배터리' 개발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3 07:20
돼지 위장관 실험에서 복약추적과 식욕호르몬 자극 두 가지 쓰임 확인…인체 임상시험은 약 2년 후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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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John Phelan / Wikimedia Commons, CC BY 3.0)

알약을 삼키듯 배터리를 삼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기계공학과 지오반니 트라베르소 교수 연구실이 이런 질문에 실제로 답을 내놓았다. 위산이라는 강한 산성 환경에 닿는 순간 스위치가 켜지듯 작동을 시작해 사흘 동안 전기를 낸 뒤, 이후 수 주 안에 몸속에서 스스로 녹아 사라지는 종이 형태의 배터리다. 전 MIT 박사후연구원 메흐메트 기라이한 세이가 제1저자로 참여한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엔지니어링에 발표됐다. 몸속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일회용 배터리라는 점에서, 삼킬 수 있는 의료기기의 동력원 문제를 푸는 실마리로 주목받고 있다.

위산이 스위치가 되는 원리

이 배터리의 핵심은 위산 자체를 전해질로 쓴다는 데 있다. 음극은 마그네슘 합금, 양극은 삼산화몰리브덴과 활성탄으로 이뤄져 있고, 여기에 생분해성 이온성 액체 젤 전해질을 더했다. 전체 구조는 식물 섬유에서 뽑은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로 얇고 구멍이 많은 종이 형태를 만들어 구현했다. 문제는 위산에 너무 빨리 녹아버리면 배터리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늦추기 위해 벌집에서 얻은 밀랍과, 일부는 사막 관목에서 뽑은 칸델릴라 왁스를 배터리 표면에 코팅했다. 두 물질 모두 이미 식품과 화장품에 쓰이는 익숙한 소재다. 흥미로운 점은 이 코팅 아이디어의 출발지다. 연구팀은 입 안에서 스르르 녹는 쌀종이 캔디 포장지를 보고 착안했다고 밝혔다. 최첨단 생체흡수성 배터리 기술이 사탕 포장지라는 일상적인 관찰에서 시작된 셈이다. 실제 성능을 보면 폼팩터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막대 형태는 개방회로전압이 최대 1.84볼트, 캡슐 안에 들어가는 작은 원판 형태는 약 1.77볼트였다. 용량은 보도에 따르면 막대 형태가 약 3.5밀리암페어시, 원판 형태가 약 1제곱센티미터당 2밀리암페어시 수준으로 전해졌다. 두 형태 모두 위산과 유사한 강산성 환경과 실제 돼지 체내에서 약 3일, 즉 72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한 뒤 서서히 성능이 떨어졌고, 이후 수 주 안에 완전히 분해됐다. 국내 한 매체는 완전분해 기간을 약 3주로 구체화해 전하기도 했다.

돼지 몸속에서 확인한 두 가지 쓰임

연구팀은 이 배터리를 대형동물인 돼지의 위장관에 넣어 실제로 작동시켰다. 첫 번째 응용은 복약 여부를 확인하는 무선인식(RFID) 태그였다. 식도에 부착한 태그가 배터리로 구동되면서 신호를 냈고, 이 신호는 몸 밖 최대 1.5미터 거리에서도 감지됐다. 환자가 약을 실제로 삼켰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구팀은 이 복약추적 시스템에 '사파리(SAFARI)'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번째 응용은 식욕을 조절하는 방향이었다. 캡슐형 장치가 위 점막을 전기로 자극해 식욕호르몬인 그렐린의 분비를 유도했는데, 20분간의 자극만으로 그렐린 수치가 평균 약 36퍼센트, 많게는 최대 약 50퍼센트까지 늘었다. 약물 없이 전기자극만으로 식욕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항암치료 등으로 입맛을 잃은 환자를 돕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2017년 선행연구와 무엇이 달라졌나

같은 연구팀은 2017년에도 위산을 동력원으로 쓰는 아연-구리 전극 센서를 돼지에게 시험한 적이 있다. 이번 연구는 그 원리를 이어받되, 크기를 더 작게 줄이고 소화관 전 구간에서 작동하도록 개선했으며 무엇보다 배터리를 이루는 소재 전체를 완전히 생체흡수되는 형태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계와 남은 과제

연구팀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했다. 배터리 개체마다 성능 편차가 있는데, 전극층의 접촉 상태나 전해질 분포, 왁스 코팅 두께가 제조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동 기간을 설계값대로 균일하게 만드는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메릴랜드대학교의 레자 고드시는 대형동물의 소화관을 통과하는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한 점을 인상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현재의 저장 용량으로는 더 폭넓은 응용에는 부족하며 지금보다 약 10배 더 많은 저장 용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존 로저스는 모든 부품이 생체흡수되면 장치 잔해가 위장관에 걸릴 위험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로기판과 RFID 칩 자체는 아직 생체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 무해 섭취'라고 부르기는 이르다는 점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또한 이번 실험은 사람이 아닌 돼지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연구팀은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장기적인 안전성과 성능, 완전한 생체흡수성을 검증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복약추적 시스템을 시작으로 약 2년 안에 인체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 석좌교수직 기금, MIT 기계공학과, 브리검여성병원 위장병학과, 미국 고등연구계획국(ARPA-H)의 지원을 받았다.

자료: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브리검여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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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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