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비는 앞으로 가는데 무늬는 뒤로 간다…날갯짓이 만든 ‘모션 대즐’ 착시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10.08 06:36
사람 터치실험서 양극단 형태의 공격점 중심, 평균 몸길이의 38% 벌어져…실제 조류와 자연환경 검증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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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앞으로 날아가는데, 눈이 처음 포착한 날개무늬는 마치 뒤쪽이나 옆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발소 회전 기둥이 옆으로 도는데도 사선 줄무늬가 위로 올라가는 듯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비에서는 날개가 접히고 펴지는 변형까지 더해져 무늬의 움직임과 몸 전체의 진행 방향이 충돌한다. 영국 엑서터대학교와 에식스대학교 연구진은 이런 ‘모션 대즐’, 즉 표적이 보이더라도 속도와 방향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게 만드는 착시가 나비의 날개무늬와 날갯짓의 결합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장 눈에 띄는 수치는 38%다. 성인 100명이 화면 속 가상 나비를 손가락으로 터치한 실험에서, 시험한 5개 형태 중 전후 운동 혼란이 가장 큰 형태와 가장 작은 형태의 공격점 분포 중심은 평균 몸길이의 약 38%만큼 벌어졌다. 화면 속 나비의 평균 몸길이 2.42㎝에 적용하면 약 0.92㎝다. 그러나 이는 모든 터치가 38%씩 빗나갔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새가 나비를 공격한 결과도 아니며, 포획률이나 생존율이 38% 변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공격점이 많이 몰린 상위 25% 고밀도 영역을 타원으로 나타내고, 양극단 두 형태의 타원 중심이 전후축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계산한 값이다.

정지한 무늬가 아니라 ‘움직이는 무늬’를 보다

나비 날개를 정지사진으로만 보는 것은 영화 한 장면으로 춤 전체를 분석하는 것과 같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무늬 자체뿐 아니라 몸이 앞으로 이동하는 동안 날개와 무늬가 위아래와 옆으로 함께 움직이는 과정이었다. 위장이 보이지 않게 하는 전략이라면, 모션 대즐은 보이는 표적의 움직임을 잘못 읽게 할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연구진은 이를 ‘전후 혼란’과 ‘측면 혼란’으로 나눴다. 전후 혼란은 뒤쪽 운동에너지와 전방 운동에너지의 미켈슨 대비, 즉 두 신호의 차이를 합으로 나눠 상대적인 격차를 나타낸 값이다. 값이 클수록 관찰자가 전진 속도를 실제보다 느리게 판단할 가능성을 뜻한다. 측면 혼란은 좌우 평균 운동에너지와 전방 운동에너지를 같은 방식으로 비교해 회전이나 좌우 진행 방향을 잘못 판단할 가능성을 나타낸다.

계산에는 EMD(elementary motion detector·기초 운동검출기)가 쓰였다. 연속 영상에서 픽셀의 밝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 앞·뒤·좌·우의 초기 국소 운동에너지를 계산하는 모형이다. 눈에 들어온 작은 구역들의 첫 운동 신호를 단순화해 보는 도구인 셈이다. 다만 EMD 값은 동물의 뇌가 최종적으로 느끼는 속도나 방향을 직접 측정한 결과가 아니다. 실제 시각계는 여러 국소 신호를 합쳐 물체 전체의 움직임을 판단한다.

5종의 실제 이륙부터 397종의 모의비행까지

연구는 네 층의 증거를 쌓았다. 먼저 유럽·아프리카 나비 5종, 7개 형태의 이륙 18회를 형태별 2∼3회 촬영했다. 카메라는 초당 1,057프레임, 1,280×1,024픽셀로 설정했다. 영상은 174∼399프레임, 시간으로는 0.16∼0.38초에 해당하는 짧은 이륙 장면이었다. 자연 무늬 영상과 같은 날개를 평균 밝기·검정·흰색으로 바꾼 영상을 비교하자 자연 무늬가 전후와 측면 운동 혼란을 모두 유의하게 더 만들었다. 처리별 분석량은 2,391프레임이지만, 이는 나비 개체나 독립된 비행이 수천 건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음으로 연구진은 유럽 나비 397종의 757개 형태형을 분석했다. 살아 있는 397종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도감의 날개 등쪽 삽화를 3차원 나비 모형에 입혀 초당 2,000프레임으로 모의비행시킨 결과다. 날개 관련 측정치 73개와 계통 관련 주좌표 3개를 별도 예측변수로 사용했다. 높은 앞날개 대비, 날개의 진행 방향에 수직인 띠, 한쪽으로 치우친 단일 띠나 대비 경계, 밝은 뒷날개, 뒷날개 꼬리처럼 울퉁불퉁한 형태가 높은 운동 혼란과 연관됐다.

날갯짓과 활공의 차이도 드러났다. 전후 혼란은 날갯짓이 있을 때 나타났지만, 측면 혼란은 날개를 편 채 활공할 때도 생길 수 있었다. 몸 전체가 앞으로 이동하는 신호에 날개의 반복적인 상하 운동이 겹쳐져야 강한 전후 충돌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전후 혼란과 측면 혼란 사이에는 통계모형 계수 β=0.518, P<0.001의 관계가 나타났다. 여기서 β는 두 측정값의 통계적 관계를 나타내는 계수이지 포획 실패율이나 백분율이 아니다.

사람의 손가락은 뒤쪽으로 끌렸다

행동실험에는 엑서터대학교 펜린 캠퍼스의 18∼70세 성인 자원자 100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는 약 50㎝ 거리에서 5개 형태를 각각 6회씩, 1인당 30회 터치했다. 계획상 총 3,000회였고 공격점 분포 그림에는 2,985건이 사용됐다. 화면은 240Hz로 설정했으며 일부 시행에서는 약 220Hz까지 낮아졌다.

가상 나비는 화면에서 약 40㎝/초로 움직였지만 날갯짓 빈도와 모션 블러, 즉 빠른 움직임 때문에 생기는 흐림은 80㎝/초 비행에 해당하도록 조정됐다. 실제 하나의 비행 조건을 그대로 옮긴 영상은 아니었다. 영상은 초당 1,000프레임으로 렌더링한 뒤 240프레임으로 줄여 제시했다. 참가자의 터치점으로부터 반경 30픽셀 안에 나비의 히트박스가 있으면 적중으로 판정했다.

전후 혼란값이 높은 가상 나비일수록 터치 위치 분포는 비행 방향의 뒤쪽으로 더 길어졌다. 이 관계의 표준화 회귀계수는 β=-0.15, P<0.001이었다. β는 효과의 방향과 상대적 크기를 나타내는 통계모형 계수다. 이를 공격 실패가 15% 늘었다거나 포획률이 15% 줄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측면 혼란에 관한 인간 행동 결과는 연구진의 모든 예측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후축 결과만으로 운동검출 모형 전체가 행동 수준에서 검증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무늬의 진화 원인까지 입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유전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상 날개무늬 5만7,600개도 계산했다. 3개 날개 형태와 4개 선택 조건, 조건별 반복을 두고 개체군당 24개씩 총 120개 개체군을 20세대 동안 선택했다. 운동 혼란이 커지는 방향으로 무늬를 고르자 실제 나비에서 볼 법한 고대비 띠와 경계가 나타났다. 이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도 비슷한 무늬로 수렴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실제 나비 무늬가 포식 압력 때문에 진화했다는 역사적·인과적 증거는 아니다.

한계는 분명하다. 실제 포식조류가 실제 나비를 추격하거나 부리로 공격하는 실험은 없었다. 사람의 시각과 팔·손가락 반응은 새의 눈과 머리 움직임, 추격 비행과 다르다. 실제 촬영도 5종의 이륙 18회에 그쳤고, 길어야 0.38초인 장면이어서 장거리 추격이나 급회전, 반복적인 방향전환을 담지 못했다. 397종 모의비행에는 기본적으로 한 종인 Hypolimnas misippus의 clap-and-fling 날갯짓을 사용해 종별 비행역학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다.

도감 삽화는 정확한 색 반사율이나 자외선 신호를 재현하지 않으며 분석도 주로 날개 등쪽에 한정됐다. 실제 촬영은 녹색 스크린에서 진행됐고, 분석 배경은 풀밭 평균 밝기의 균일한 화면으로 바뀌었다. 숲이나 꽃밭, 하늘처럼 복잡하고 움직이는 자연 배경에서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포획 성공률과 나비의 생존·번식 성공률도 측정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모션 대즐을 나비 무늬의 유일한 기능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경고색, 의태, 짝 선택, 체온조절, 정지 상태에서 윤곽을 흐리는 기능과 함께 작동할 수 있는 비배타적 가능성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날개무늬를 고정된 그림으로 떼어 보지 않고, 날갯짓과 몸의 전진이 합쳐진 동적 신호로 분석했다는 데 있다. 그 신호가 실제 새의 공중 추격과 나비의 생존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는 자연환경에서 이어질 검증 과제로 남았다.

자료: 엑서터대학교·에식스대학교·영국 생명공학·생물과학연구회·영국 왕립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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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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